비행기는 훨훨 날아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에 내리기 전 우리는 기내에서 한국어를 하는 승무원을 만났고, 물어물어 환승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우리의 최대 궁금점은 입국심사였다. 입국심사를 받으면 공항 밖으로 나가 다시 아침에 티켓팅을 해야 했고, 출국심사를 받아야 했다. 밤 10시 30분 도착 7시 20분 출발인 우리였기에 입국심사를 한다면 밤을 지새워야 한다.
나는 중, 고등학생 때도 밤을 새운 적이 없었다. 공부에 열중해 자는 시간까지 아낀다는 고3 때도 말이다. 밤과 낮이 바뀐 적은 많았지만 그래도 하루에 6시간 이상은 꼬박 잤다. 나는 인간의 기본 욕구에 충실한 사람이기 때문에, 하루라도 기본 수면 시간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면 하루 종일 빌빌 거리며 힘을 못 쓸 정도였다. 그렇기에 난 편히 쉴 수 있는 숙소가 제일 중요했다. 걱정하는 우리가 안타까웠는지, 승무원은 이리저리 동승한 다른 승무원에게 내용을 물어본 뒤 우리가 안심할 수 있도록 환승하는 곳까지 안내해주었고, 우린 감사인사를 하며 그들과 헤어졌다.
다행히도 우려했던 것과 달리 우리는 입국심사를 받지 않아도 됐다. 우리의 바우처를 확인한 직원은 간단한 보안 검색만 진행한 후, 비행기표 밑에 스티커를 붙여주며 우리의 짐이 싱가포르로 바로 갈 것이라고 설명해주었다. 걱정하던 것이 해결되니 맥이 탁하고 풀렸고, 그것이 신호탄이라도 된 듯 배도 꼬르륵거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먼저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허기를 달래기로 했다. 숙소로 가는 길에 있는 면세점과 상점들은 시간이 시간인지라 마감을 했는지, 문이 닫혀 있어 불안했다. 이대로 굶고 자야 하는 것인가 고민하던 차, 호텔에 도착하기 5분 전쯤 전에 열려있는 음식점을 발견했다. 꼭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같았다. 우리는 짐을 풀고 나오자며 호텔로 발걸음을 돌렸다.
우리가 찾아본 호텔은 사마 사마였고, 이 사마 사마는 환승객을 위한 호텔이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호텔들과는 다르게 하루를 예약하는 것이 아닌 시간제 예약이었다. 한 번에 최대로 예약할 수 있는 시간은 6시간이었고, 이래저래 1시간가량을 허비한 우리로서는 밥 먹는 시간까지 고려해 1시부터 7시까지 예약을 하기로 하고 근처에서 밥을 먹기로 했다. 근처에 햄버거와 치킨을 파는 파파이스가 있었지만, 언니와 나는 둘 다 음식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서는 아까 보았던 음식점에서 현지식을 도전하기로 했다. 코코넛 밀크를 넣고 만든 국수인 락사와 무난해 보였던 치킨라이스를 시켰는데, 이번에도 음식은 실패했다. 공항과 기내식이 맛이 없는 건가, 아님 말레이시아 음식이 우리와 안 맞는 걸까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식사를 대충 챙긴 뒤, 시간에 맞춰서 가기 위해 우리는 근처를 둘러보았다. 늦은 시각이어서 인지 대부분의 가게와 면세점들은 문을 닫았고, 근처에 토스트 박스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일 아침은 여기다!
사마 사마를 보고, 처음 일본인이 사장인가 싶었다. 사마 사마라니. 일본어의 '~사마'만 생각하고, 고객을 왕처럼 이런 뜻인가 라는 오해를 했다. 알고 보니 사마 사마는 말레이어였다. "천만에요."라는 뜻이라고.
헤어질 때 모두가 Thank you. 하고 떠나니 사마 사마 하며 이름으로 배웅하는구나 싶었다.
12시에 사사 사마 호텔로 돌아와서 우리는 조식이 없는 6시간을 예약했다. 근처에 토스트 박스가 있는 것을 발견하기도 했고, 조식 값이 생각보다 많이 비쌌기 때문이었다.
사마 사마는 시간제 호텔인 만큼, 비즈니스호텔처럼 깔끔했다. 모든 짐을 캐리어에 실었던 우리에게 있어서 씻을 도구가 있다는 것은 정말 최고가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옆 방의 소리가 큰 것을 보면 방음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이미 시간도 12시가 넘었기에, 머리를 감는 것은 쿨하게 포기하고 뜨거운 물에 씻고 나왔다. 오자마자 틀었던 에어컨이 시원한 바람을 내뿜자, 부르르 떨며 이불속으로 직행해 휴대폰 알람을 맞췄다.
6시에 일어난 우리는 씻고 짐을 정리해 6시 반쯤 숙소에서 나왔다.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많은 듯 토스트 박스에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의 옆 나라이기 때문에, 카야잼 토스트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밀크티와 카야잼 토스트, 수란이 있는 세트 2개를 시켰다. 계산대 옆에서는 입이 긴 주전자에 담긴 홍차를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 컵에 받아내는 쇼 아닌 쇼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수란을 어떻게 먹는지 몰라, 주변 사람들을 자세히 둘러보았다. 눈이 마주친 외국인은 자신을 따라 하라는 듯 후추 조금과 간장을 수란에 쪼르륵 따르고는 수저로 휙휙 저었다. 짜지 않을까 걱정을 했지만, 외국인을 따라서 후추와 간장을 부었다. 생각보다 짜지 않고 고소한 맛이 강했다. 후루룩 수란을 마시다, 달콤하고 바삭한 카야토스트를 수란에 찍어먹었더니 그것도 나름 별미였다. 아침을 배부르게 먹고 일어나니 7시가 다되어간다. 비행기 시간은 7시 20분이었고, '같은 공항 내인데 못 타지는 않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언니와 얼른 서둘렀다.
언니와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같은 공항 내라도, 입국심사를 하지 않을 뿐 우리는 짐 검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짐 검사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너무 많았다. 비행기 출발 15분 전이었다. 우리는 발을 동동 굴렀다. 아침을 너무 여유롭게 먹은 탓일까 잠을 너무 잔 탓일까. 사람이 많았지만 우리는 다행히 줄을 잘 선 덕에 빨리 짐 검사를 벗어날 수 있었고, 가방을 둘러메고 우리의 비행기 게이트로 빠르게 뛰었다.
먹고 바로 뛰니 속이 울렁거리고 토할 것 같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거 놓치면 완전 꽝인데. 누구랄 것 없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이 일행이 있음을 알리기로 하고 뛰었다. 다행히 비행시간 10분 전 우리는 게이트에 도착했다. 물론 우리가 비행기에 올라타는 마지막 승객이었다. 미안한 마음에 쏘리를 외치며 비행기에 올라타 자리에 앉고 숨을 골랐다.
출발 전 흐릿했던 하늘과 달리 어느 정도 고도 위로 올라오자 밝아오는 아침이 보였다.
한국이었다면, 회사에 다닌다면 이 시간은 출근을 하려 준비하는 시간일 것이다. 퇴사 후엔 밤낮이 바뀐 채 잠들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일 것이고. 내가 이 시간에 일어나 비행기를 타고 있다니 참 감회가 새로웠다. 밖을 보며 감상에 젖어 있을 때쯤, 비행기 아래의 구름이 심상치 않았다. 아침이 밝아오는데도 흐릿한 구름들은 곧 비를 쏟을 것만 같았다. 여행 첫날부터 비라니.
아니라 다를까, 착륙할 때쯤이 되니 출발 전 흐리던 싱가포르는 현재 비가 오고 있다고 했다.
열대지방이라 스콜이 빈번해서 그런지, 싱가포르는 금세 날씨가 흐려졌다 소나기가 오기도 하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게 개기도 한다고 했다. 질서의 나라, 규율의 나라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나라라고 불리는 싱가포르에 대한 기대감이 치솟았다.
도착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무엇을 보고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싱가포르에 도착했다는 소리와 함께 내 가슴은 더 두근두근 뛰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