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를 품은 베뉴의 마케팅 전략
일상이 지루할 때쯤 화려한 공간을 찾아간다. 어지러운 공간 속에 고독하게 혼자 있는 것을 즐기는 이상한 괴벽을 갖고 있는 나는, 잠깐의 쾌락을 즐기려 파라다이스 시티를 찾아갔다.
지하 주차장에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제일 먼저 보이는 것은 동화 속에 나올 듯 여리여리 비치는 황금 거울 천장이다. 그 화려함에 취해 1층 플라자에 거의 올라왔을 때쯤, '휘영청 밝은 달이' 갑자기 눈앞에 나타났다.
그 달은 지구에서 멀리 떨어져 비추는 작은 점 같은 달이 아니라, 바로 10미터 위에 떠 있는 진짜 분화구들이 있는 달이었다. 알고 보니 설치 작가 루크 제람의 작품을 12월까지 전시하는 것이다. 파라다이스 시티는 베뉴를 하나의 예술 공간으로 바꾸는 작업을 많이 시도하는데, 이번에도 달의 뒷모습까지 재현해 방문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파라다이스는 왜 달을 훔쳐다 놓았을까?
나는 카지노를 좋아하지 않지만 카지노가 있는 베뉴를 좋아한다. 십여 년 전 처음으로 라스베이거스를 갔을 때 들어섰던 윈(Wynn) 리조트의 기억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비트의 라운지 음악이 흐르고 부드러운 카펫 위를 걸어가며 잔잔히 퍼지는 시트러스 향이 나는 그 공간은, 내가 익히 알고 있는 부도덕하고 음침한 카지노장이 아니라, 게임-쇼핑-음식-공연이 함께 있는 정말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을 드디어 찾았다는 기분이 드는 곳이었다. 덕분에 나는 밤마다 카지노도 하지 않으면서 줄곧 윈, 벨라지오, 베네시안, 시저스 등을 돌아다니며 그 분위기에 취해 정신없이 놀았다. 그때야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즐기다만 왔지만, 그 모든 것은 하나의 시스템 하에서 철저히 기획된 공간임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라스베이거스의 베뉴 마케팅 시스템은 전 세계 모든 복합 리조트의 모델이 되고 있다.
- 모든 경험을 시저스 제국에서: CAESARS ENTERTAINMENT의 CAESARS REWARDS
카지노 베뉴의 주 매출은 당연히 카지노 고객을 통해 나온다. 그래서 대부분의 카지노 베뉴들이 High Rollers, 즉 커다란 금액을 베팅하는 VIP를 위한 마케팅 프로그램을 실행하는데, 그 원조격이자 가장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시저스 엔터테인먼트의 CAESARS REWARDS이다. CAESARS REWARDS는 카지노의 VIP 고객들이 카지노뿐만 아니라 시저스 그룹의 호텔, 레스토랑, MICE, 콘서트 등 다양한 활동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든 로열티 프로그램이다. 시저스 그룹은 Caesars 브랜드뿐 아니라 Harrah's, Horseshoe 등 다양한 베뉴를 가진 거대한 리조트 그룹이다. 시저스의 마케팅 전략은 고객들에게 브랜드-로열티-서비스가 연결된 형태의 '총체적 경험(Holistic Experience)'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고객들은 카지노와 비(非) 카지노 시설을 포함한 다양한 시저스의 콘텐츠를 즐기면서 리워드 포인트를 얻고, 포인트로 다시 공간을 즐길 수 있다. 이러한 마케팅 프로그램은 자연스레 카지노 고객과 비(非) 카지노 고객의 동반 유입을 가져다주었다.
파라다이스 시티는 국내 몇 안 되는 카지노 복합 리조트이다. 국내 카지노 사업 특성상 내국인은 출입하지 못하기 때문에 카지노의 주 고객은 대부분 중국, 일본 등 아시아 고객이다. 파라다이스 시티에 달이 떠 있을 때, 그것은 추석을 맞아 국내 고객들을 끌어 모으기 위한 콘텐츠였다기 보다, 오히려 아시아의 음력 문화를 기념하기 위한 보편적인 콘텐츠를 내세웠다고 보는 것이 맞다. 즉,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음력 문화의 대표적 오브제인 '달(月)'을 통해 파라다이스 시티는 아시아의 복합 리조트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이는 다시 아시아 고객들을 자연스럽게 베뉴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한다.
베뉴(Venue)는 회사나 집처럼 매일 머무는 곳이 아니라 의도적 목적을 갖고 가야 하는 '낯선' 공간이기 때문에, 이렇게 보편적이고 익숙한 브랜드 콘텐츠는 집객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가 낯선 여행지에서 맥도널드를 만났을 때의 반가움처럼 말이다. 즉 목적지로서의 베뉴는 낯선 공간이란 어색함을 상쇄하기 위해 익숙한 브랜드 콘텐츠를 사용해야 한다. 베뉴로서의 낯선 파라다이스 시티에서 우연히 만난 달은 아시아인들에게 분명 매우 반갑고 익숙한 콘텐츠인 것이다.
시저스와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의 공통점
전 세계 성공적인 카지노 베뉴의 운영방식을 들여다보면, 대게 비슷한 방식을 따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즉 매력적인 콘텐츠로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 '체류시간을 늘려' 모든 소비가 그 베뉴 시설들-카지노, 호텔, 레스토랑, 엔터테인먼트, 컨벤션 센터-안에서 일어나게 하는 것이다. 시저스의 Rewards 프로그램도, 또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샌즈의 복합 리조트 방식도 모두 유사하다. 이는 파라다이스 시티도 결국 같은 방식이다. 그것이 '달'이건, 또는 MICE 이벤트이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오랜 시간 '체류'하게 하느냐의 문제가 복합 리조트의 성패를 좌우한다. 베뉴의 총체적 경험을 제공하여 방문한 사람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것, 이것이 카지노를 품은 베뉴의 공간 마케팅 전략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사례는 비단 카지노 베뉴뿐 아니라 최근 복합 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성공 케이스를 만들고 있는 국내의 디뮤지엄이나,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에서도 찾을 수 있다. 이 두 베뉴는 미술관이면서도, 굳이 전시가 아니어도 그저 샵에서 기념품(Goods)을 사기 위해, 또 트렌디한 레스토랑과 카페를 찾기 위해 방문한다. 그래서 성공한 베뉴들은 그 본래의 목적이 아니어도, 방문하고 머물러야 할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카지노가 아니어도, 전시가 아니어도 와야 할 이유가 있어야 한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로 체류시간을 늘려야 한다.
최근 들어 국내의 많은 지자체 의원들이 복합리조트 건립을 위해 전 세계의 좋다고 하는 도시와 카지노 리조트를 벤치마킹하러 다닌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치 컨벤션센터 하나를 지어놓고 MICE 도시를 만들겠다고 하는 사람들과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드웨어의 생명력은 길어봐야 10년이다. 한국의 카지노를 포함한 복합 리조트 베뉴는 아시아를 관통하는 콘텐츠로 방문한 아시아 인들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Holistic 마케팅 전략에 집중해야 한다. 베뉴가 불러들인 사람들이 도시의 콘텐츠와 함께 연결되어 오래도록 머물게 하는 것, 그것이 치열한 복합리조트 간의 경쟁에서 도시와 베뉴가 함께 승리하는 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