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확장인가, 현실의 복제인가
부산 엑스포 유치가 한창인 지금, 왜 하필 이 시대에 엑스포인가라는 질문이 나올 만도 하다. 엑스포는 언제 생겨난 것인가? 엑스포는 산업혁명이 낳은 19세기의 시대적 산물이다. 집에서 물레방아를 돌려 실을 짜던 사람들이 급작스럽게 나타난 증기기관과 기계의 발명으로 물건을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게 되자, 그 많은 물건을 팔기 위한 수단으로 엑스포가 태어난 것이다. 파리 만국박람회, 런던 만국박람회, 그리고 고종 황제 때 우리 조선이 처음 참가한 시카고 만국박람회 등 박람회란 1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업의 판매와 유통을 위한 수단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판매와 생산의 주체인 기업들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엑스포뿐 아니라 다양한 마케팅 채널을 갖게 되었다. TV와 라디오, 신문의 매스미디어 시대를 거쳐 제3의 물결로 상징되는 컴퓨터와 인터넷의 시대, 그리고 AI와 블록체인, 메타버스 등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이제 엑스포는 디지털 시대에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아날로그적 유물로서 남아야 하는 게 아니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결국 이러한 물음은 근본적으로 마이스 산업의 존재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보는 계기가 된다. 모두가 연결된 초연결 시대에 마이스는 과연 필요한가? 도대체 마이스란 무엇을 얻기 위한 비즈니스인가?
마이스 참가자는 기본적으로 박람회나 컨벤션을 통해 새로운 정보 습득과 판매, 홍보의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 이것이 마이스 비즈니스가 일어나는 기본적인 욕구이다. 그러나 이러한 욕구는 코로나라는 환경 파괴적 변이 바이러스와 5G, 클라우드 같은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굳이 오프라인에서 만나지 않더라도 해결할 수 있다. 이제 비대면 화상회의 기술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대중적 소통 수단이 되었고 팬데믹이 엔데믹으로 바뀐 지금에도 오히려 줌(Zoom) 회의가 더 편하게 느껴지는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온라인으로 가능해지면, 오프라인에서의 만남은 반드시 그곳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있을 때만 필요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제 무언가 독특한 경험이나 즐거움이 있는 공간을 원한다. 단순 정보 전달과 판매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대체해 버렸다. 더 이상 오프라인 마이스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는 생존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러한 변화들이 오프라인과 온라인에 새로운 대체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오프라인에서는 기존의 컨벤션센터나 호텔이 아닌 박물관, 미술관 고궁 등의 독특한 공간들을 마이스 시설로 활용하고자 한다. 유니크 베뉴가 바로 이런 공간을 지칭하는 것인데 결국 정형화되지 않은 공간에서의 낯선 경험은 오프라인만의 차별화 요인이 되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이러한 모습이 온라인에서도 같이 나타나는데, 그것이 바로 메타버스라는 디지털 공간이다. 결국 유니크 베뉴와 메타버스는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디지털 시대에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마이스 공간이다.
메타버스가 가능해지려면 아바타로 대변되는 자아와 그 자아가 표현하려는 콘텐츠(음악, 그림, 영상, 웹툰, 도서 등)가 필요하다. 메타버스의 참가자들은 그 콘텐츠가 맘에 들면 사고 싶어 지는데, 이때 디지털 콘텐츠를 사고팔기 위한 전자상거래 수단이 블록체인과 NFT이다. 또한 수많은 콘텐츠의 홍수 속에 내가 원하는 것을 추천받기 위해선 빅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는 머신러닝과 AI 기술이 필요하다. 결국 메타버스란 단순히 3D로 만들어진 가상공간이 아니라 디지털 콘텐츠와 블록체인, NFT, 빅데이터, AI 등이 어우러지는 ‘메타버스 환경’이어야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메타버스를 활용해서 마이스를 기획하려 한다면 메타버스가 마이스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다시 말해 가상공간에서의 마이스는 지금보다 한 발 앞선 미래를 보여주기 위한 현실의 확장 공간인지, 또는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을 온라인에서 동일하게 보여주려는 현실의 복제 공간인지를 명확히 해야만 한다. 이러한 본질적 고민이 선행되지 않고선 메타버스 마이스란 마치 십여 년 전의 사이버 전시회처럼 그저 유행처럼 왔다가 사라지는 신기루일 뿐이기 때문이다.
메타버스를 활용하여 새로운 마이스를 기획하려는 기획자들은 메타버스 공간을 만들기 전에 먼저 아래의 5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답해보자. 메타버스 마이스는 현실을 뛰어넘는 비전을 제시하는 공간인가, 아니면 현실을 복제한 디지털 트윈의 공간인가.
1. 행사의 목적이 무엇인가?
마이스 기획자는 행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행사의 목적이 행사에 필요한 디지털 기술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참가기업과 바이어 간 만남이 중요하다면 비즈니스 매칭 기술을, 행사를 통한 수익 창출이 필요하다면 전자 상거래 기술을, 참가기업들의 브랜딩이 필요하다면 어워드나 피칭 등의 마케팅 솔루션을, 그리고 교육과 네트워킹이 필요하다면 무엇보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중요하다. 이렇게 행사 목적은 디지털 마이스의 선행 기술을 정의하기 때문에 불필요한 시간과 예산 낭비를 방지한다. 목적 없는 행사는 영혼 없는 육체와 마찬가지이다.
2. 1:1 개인 맞춤형 데이터 제공이 가능한가?
마이스 방문자는 늘 흔적을 남긴다. 행사 주최자들은 늘 마이스 방문자의 개인 정보를 요구해왔다. 기업명, 방문 목적, 관심 품목, 관심 기업 등 방문자의 이런 정보를 활용해서 주최자들은 무엇을 방문자에게 제공해왔나? 여전히 입장료 무료 이외엔 특별한 혜택이 없다. 그러나 마이스 방문자의 데이터는 AI가 가장 선호하는 데이터일 것이다. 매해 같은 기간에 같은 목적으로 같은 방문자들이 제공하는 데이터는 머신러닝을 통해 방문자들의 패턴을 예측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정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CES나 Reed Exhibition 같은 선도적 행사 주최자들이 AI를 활용해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AI 추천 시스템을 통해 개개인에게 방문할 부스, 세미나, 관람객들을 연결해준다. 메타버스 마이스가 생존하려면 불특정 다수가 아닌 오직 ‘나’를 위한 데이터를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데이터들이 기업들에게 Sales Lead를 Sales로 바꾸는 중요한 자원이 될 것이다.
3. Landing Page와 연결할 수 있는가?
오프라인의 마이스는 Serendipity, 즉 우연한 발견의 기쁨이란 것이 있다. 지나가다가 우연히 좋은 참가기업의 제품을 발견할 수도 있고, 듣고 싶었던 연사의 세미나가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디지털 환경에서의 마이스는 이러한 우연성이 없다. 오로지 행사 주최자가 편집한 대로 화면에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메타버스 마이스는 오히려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에게 불리한 환경이 된다. 첫 화면에 보이는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 말고는 2페이지 뒤에 숨어있는 작은 회사들은 눈에 안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메타버스 마이스는 3D로 화려한 전시장 로비나 부스를 보여줄 것이 아니라 작지만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의 제품을 실제처럼 구현하고 드러내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중소기업 제품이 자리하고 있는 그 마지막 URL까지 연결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Landing page 마케팅의 핵심이다.
4. 작은 기업들을 드러내고 노출시킬 수 있는가?
마이스는 대기업을 위한 것이 아니다. 마이스는 작은 기업들을 위한 마케팅 수단이다. 대기업은 마이스가 없어도 된다. 마이스의 주인공은 대기업처럼 직접 광고나 홍보를 크게 할 수 없는 중소기업과 스타트업의 마케팅 수단이어야 한다. 따라서 마이스 기획자들은 메타버스 안에서 어떻게 작은 기업들을 노출시킬 수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 고민의 답이 바로 기업들을 부스 안에 가둬두지 않고 전체 마이스 플랫폼을 활용할 수 있게 만드는 아웃보딩의 기술이다. 기업들이 직접 세미나의 연사가 되게 하고, 어워드를 통해 미디어의 눈에 띄게 하며, Ceremony와 corporate event의 기회를 마련하여 은밀한 비즈니스 미팅을 제공해야 한다. 이러한 마케팅 프로그램은 그것이 메타버스 환경일지라도 작은 부스를 벗어나 검색되고 노출되게 만든다. 메타버스는 시공간의 한계를 넘어 지속적으로 기업들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어야 한다.
5. 방문객의 체류시간을 늘릴 수 있는가?
디지털 마이스의 최대 약점은 No Show, 즉 사전 등록자가 현장 접속으로 연결되지 않는 것이다. 약속한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만큼 마이스 기획자 입장에서 식은땀 나는 경우가 없다. 특히나 온라인은 익명의 공간으로서 굳이 내가 참가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든다. 누군가 대면의 반대말은 비대면이 아니라 외면이라고 했던가, 메타버스 마이스 역시 사람들에게 외면받지 않으려면 이곳을 떠나지 않고 오래 머무를 수 있게 체류시간을 늘리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CES는 디지털 공간에서 세미나 세션 사이사이를 블랙아웃 화면이 아니라 마치 CNN 앵커가 뉴스를 전달하듯 CES의 전시 현장 소식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이제 마이스는 행사가 아니라 미디어이다. 그 미디어가 전달하는 뉴스와 소식들이 CES 참가자들을 떠나지 않고 온라인에 머물게 했다. 메타버스 마이스 기획자는 이렇게 온라인에서의 체류시간을 늘리는 전략이 필요하다.
위의 다섯 가지 질문들에 대하여 깊이 있게 고민했다면 메타버스 마이스의 수준은 한결 달라질 수 있다. 사람들은 더 이상 화려한 그래픽에 속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화려함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1:1 연결과 한 발 앞서 다가올 미래를 먼저 만날 수 있는 생경한 경험이다. 그것이 결국 디지털 마이스를 오프라인과는 차원이 다른 공간으로 존재하게 한다. 그때서야 비로소 메타버스는 생명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