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를 장악하라.
전시나 베뉴 마케팅 강연에서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직장인은 영어로 말을 잘하는 것보다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솔직히 그 어려운 영어 테스트를 통과하고 입사해 봐야 일 년에 영어를 쓸 날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쓰지도 않을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야 할까요? 언젠간 결국 그 실력을 보여줄 때가 오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로 외국 바이어가 방문한다거나, 또는 전시회나 포럼에서 스피치를 할 기회가 생기면 CEO가 제일 먼저 고민하는 것이 누구를 발표자로 세울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때 선택 조건은 단순히 영어로 말을 잘하는 것보다 무대에서 외국인들에게 자신감 있게 우리 회사의 제품과 기술, 그리고 비전을 발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런 흔치 않은 기회에 무대에 서게 되면, 그리고 외국인들에게 인상 깊은 프레젠테이션을 남기게 되면, 이후 회사의 모든 PT는 웬만하면 그 사람이 하게 됩니다. 회사는 학교처럼 모두가 잘 되게 하는 곳이 아니고 가장 성과를 내는 사람이 기회를 잡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잘하게 되면 글로벌 마케팅 인재로 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의 궤도에 올라타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영어로 프레젠테이션을 잘할 수 있을까요? 영어로 기본적인 대화만 할 수 있다면 아래의 6가지만 숙지하면 분명 다른 모습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내 발표를 듣는 청중들의 종류는 딱 2가지입니다. 내 이야기에 웃고 손뼉을 쳐주는 사람들과 내 이야기를 듣자마자 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졸지 않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할까요?
제일 중요한 것은 발표 자료를 만들기 전에 내 발표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그들이 어떤 정보를 원하고 어떤 내용을 듣고 싶어 하는지를 파악한다면 그 내용에 맞추어 발표 자료를 준비하면 됩니다. 단 15분짜리 글로벌 포럼에서 장황하게 회사의 역사를 읊고 있다면 그 누구도 그 이야기에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참가자들의 회사 정보와 직급, 지식의 수준 정도만 파악해도 공감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있습니다. 반드시 발표 자료를 청중의 관심과 수준에 맞추어 만들어야 합니다.
단 10분짜리 애니메이션이거나 3시간짜리 영화라도 모든 이야기에는 서사 구조가 있습니다. 기-승-전-결, 또는 발단-전개-절정-결말의 이야기 구조가 바로 그것입니다. 비즈니스 프레젠테이션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부터 우리 제품의 장점을 열거해 봐야 청중은 궁금증만 생길 뿐입니다. 왜 이 제품을 만들었지? 이미 타사에서 만들고 있는데 차별점이 뭐지? 등등 그 개연성을 해결해 줘야 제품의 설명이 이해될 것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짧은 발표라 하더라도 이야기 구조를 만드는 게 필요합니다. 처음 시작은 관련 시장이나 제품의 동향, 문제점을 보여주고 이 제품의 만든 목적을 설명한다면 훨씬 더 깊이 있는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제품의 가격, 스펙 등은 전체 구성의 삼분의 이 지점에서 보여주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계획이나 비전 등으로 마무리하면 마치 영화의 엔딩 크레디트를 보듯 자연스럽게 끝낼 수 있습니다.
TED 발표자나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또는 생전의 스티브 잡스가 PT 하는 모습을 보면 늘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무대 한가운데에 발표자가 선다는 것이죠.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인들을 보면 좀 다릅니다. 발표자는 구석의 포디엄 뒤에 숨어 있고, 무대 한가운데는 커다란 스크린이 주인공으로 나섭니다.
그럼 발표자의 위치는 어디에 서는 것이 좋을까요? 만약 학술행사와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라면 포디엄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기업행사나 글로벌 마케팅 무대에서 청중을 휘어잡는 게 목표라면 당연히 무대 가운데에 발표자가 서야 합니다.
기업행사는 청중을 설득하는 자리입니다. 우리 회사에 투자하라거나, 또는 우리 제품을 구매하라거나 어떤 목적이건 청중이 설득되고 공감되어야 움직일 것입니다. 따라서 발표자가 무대 가운데서 청중들의 눈을 마주치고 목소리뿐 아니라 몸짓과 표정 등 다양한 액션을 통해 마치 연극배우처럼 움직일 수 있을 때 청중들은 자연스레 발표에 몰입하게 됩니다. 영어는 거들뿐, 발표자가 자신 있게 무대 한가운데 서는 것만으로도 언어와 상관없이 청중을 압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 중엔 자신의 실력을 뽐내고 싶은 나머지 평소에는 잘 쓰지도 않는 문어적 표현이나 시집에나 나올만한 추상적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어려운 단어를 쓰지 않아도 청중이 내용에 공감하면 깊은 인상을 받게 됩니다. 또한 글로벌 포럼에서는 동시통역이나 순차통역을 쓰는 경우도 많은데 옥스퍼드 영어 사전에나 나올법한 단어를 쓰면 통역사가 순간 당황하여 그 의미를 잘못 전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비슷한 의미라면 고등학생 정도면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단어를 쓰는 게 좋습니다. 오히려 비영어권 사람들이 뉘앙스를 잘 모르고 전달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으므로 말한다는 tell, 아름답다는 beautiful, 좋다는 good 수준의 쉬운 단어를 활용하면 발표할 때 훨씬 부담도 덜게 됩니다.
본인은 모르지만 영상으로 내 발표 모습을 찍어보면 평소에는 몰랐던 이상한 버릇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계속 손으로 머리를 만진다거나 의미 없는 단어를 계속 반복한다거나 또는 특정 단어의 발음이 잘 안 들리는 경우 등 사람마다 천차만별로 특징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미리 전체 발표 과정을 연습할 때 반드시 영상으로 찍어서 본인의 발표하는 모습을 수정하는 게 필요합니다.
계속하여 수정해도 본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특정 발표자를 롤모델로 정해서 계속 그 사람의 발표 스타일을 모방해도 됩니다. 스티브 잡스나 일론 머스크, 또는 TED 영상의 많은 발표자 중 가장 본인이 닮고 싶은 대상을 찾아 반복하여 따라 하다 보면 어느새 모방을 뛰어넘어 자신만의 발표 스타일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앞서 얘기했던 모든 것들, 즉 이야기하듯 말하고 무대 가운데에 서고 무한 반복으로 연습하더라도 발표 자료를 발표자가 만들지 않으면 절대로 효과 있는 무대를 만들 수 없습니다. 발표 자료에 담기는 모든 언어는 자신의 언어로 만들어야 합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요새는 일단 한글로 전체 시나리오를 만든 뒤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에 입력하면 자동으로 영어로 바꿔 줍니다. 또는 Grammarly 같은 프로그램을 쓰면 더욱 자연스러운 영어 문장으로 만들어 줍니다. 이제는 Chat GPT가 아예 시나리오를 만들어 주기도 하죠.
따라서 영어 실력은 AI에게 맡기고 본인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평소에 본인이 쓰는 언어로 구성해야 무대에서 자연스럽게 발표를 끌고 갈 수 있습니다. 설사 화면이 잠시 끊기더라도 발표 자료를 본인이 만든 사람들은 떨지 않습니다. 자기 고백을 하는 사람들이 자료 없이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위의 6가지를 이해하고 미리 준비한다면 그 누구보다 멋진 영어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이나 고등학교에서도 단순히 영어로 말하기보다 무대에서 영어 프레젠테이션하는 능력을 키워준다면 앞으로 한국의 글로벌 마케팅 수준이 훨씬 올라가지 않을까요?
결국 자신만의 언어로 무대를 장악하는 것, 그것이 바로 영어 프레젠테이션의 핵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