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피칭은 기세다

by 이형주 David Lee

글로벌 전시회나 콘퍼런스 무대에서 CEO들의 피칭을 지켜보다 보면, 비슷한 장면이 반복된다.

무대에 오른 CEO가 슬라이드를 넘기며 제품을 설명한다. 시장 규모, 기술 우위, 성장 가능성까지 모두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발표가 끝나면 청중은 박수를 친다.

그런데 그게 다다.


발표가 끝나고 무대를 내려오면, 사람들은 이미 다음 발표자에게 관심을 옮긴다. 명함을 건네는 사람도 있지만, 진지한 미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결국 "좋은 발표였습니다"라는 인사만 남는다.


반면, 어떤 CEO는 다르다. 무대에 오르는 순간부터 공기가 달라진다. 슬라이드가 화려하지 않아도, 영어가 완벽하지 않아도 청중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발표가 끝나면 질문이 쏟아지고, 무대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다음 주에 시간 되세요?"라는 제안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대체 무엇이 다른 걸까? 나는 그 차이를 '기세'라고 부른다.


첫 30초가 결정한다


비즈니스 피칭에서 기세는 단순한 분위기나 자신감과는 다르다. 그 사람의 태도, 시선, 첫 문장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나는 이미 이 시장의 플레이어다"라는 전제, 그것이 기세다.

글로벌 바이어와 투자자는 생각보다 냉정하다. 그들은 기술의 디테일보다 훨씬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이 사람은 우리 시장을 이해하고 있는가?"

"이 CEO와 일을 하면 의사결정이 빨라질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숫자나 슬라이드 안에 있지 않다. 대부분 첫 30초 안에 결정된다.


문제 제기가 아니라 선언으로


글로벌 피칭에서는 '문제 제기'로 시작하는 방식이 자주 실패한다. "현재 시장에는 이런 문제가 있습니다"라는 문장은 논리적으로는 맞지만, 바이어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문제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기세 있는 피칭은 다르게 시작한다. 결과와 방향성으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미 이 시장에서 이런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의 변화를 만들어냈습니다."


이 한 문장은 설명이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그리고 그 선언이 바이어의 질문을 끌어낸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죠?"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피칭은 이미 성공의 궤도에 올라 있다.


기술을 이야기로 번역하라


또 하나, 자주 목격하는 장면이 있다. 기술 설명은 훌륭한데 청중의 표정이 점점 멀어지는 순간이다.

"정확도 98.7%", "속도 3배 향상", "AI 기반 알고리즘". 물론 중요한 정보다. 하지만 청중이 정말 듣고 싶은 것은 따로 있다. 그 기술로 무엇이 달라지는지, 그리고 그들의 고객이나 비즈니스가 어떻게 바뀌는 지다.

기세 있는 피칭은 기술을 설명하지 않는다. 기술을 이야기로 번역한다.


"이 솔루션 덕분에 현지 병원은 야간 근무 인력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맞벌이 가정은 하루에 15분의 여유를 되찾습니다."


이 순간 CEO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스토리텔러가 된다. 그리고 청중은 제품이 아니라 미래의 장면을 보게 된다.


무대 위의 태도는 연습으로 만들어진다


무대 위에서의 기세는 즉흥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철저한 준비와 반복에서 만들어진다.

글로벌 피칭을 잘하는 CEO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무대에 오르자마자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 포디움 뒤에 머무르지 않고, 자연스럽게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와 청중과 눈을 맞춘다. 슬라이드보다 먼저 말을 꺼내고, 화면은 그 말을 따라오게 만든다.

이 모든 행동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그리고 그 태도는 연습으로 충분히 만들어진다.


유치가 아니라 초대다


많은 기업이 바이어를 '유치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로 성과를 만드는 기업들은 무대에 오르기 전 바이어를 초대한다. 무대에 오르기 전 이미 메시지가 정리되어 있고, 발표 이후의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으며, 이번 피칭이 '한 번의 발표'가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라는 점이 분명하다.


이때 피칭은 요청이 아니라 제안이 된다. 그리고 그 제안에는 자연스러운 기세가 실린다.

비즈니스 피칭의 기세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 대한 이해, 반복된 리허설, 그리고 수많은 실패 경험이 쌓여 만들어진다.


글로벌 무대에서 청중은 당신의 영어 발음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훨씬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이 CEO와 함께라면, 이 비즈니스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말보다 태도로 답할 수 있다면, 그 순간 이미 피칭은 절반 이상 성공한 셈이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비즈니스 피칭은 결국,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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