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회가 기업 평판을 만드는 시대:주최자의 새로운 역할

2026 전시산업 트렌드

by 이형주 David Lee

전시회 참가 그 자체가 곧 브랜딩이다.


기업들의 전시회 참가 목적이 판매나 홍보가 아니라, 고객과의 네트워킹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설파한 지 불과 3-4년밖에 안되었지만, 지금은 그 네트워킹마저도 링크드인이나 자체 기업행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시대이다. 이렇게 전시회의 참가 목적이 점점 희미해져 가는 것 같지만, 여전히, 아니 오히려 기업들은 더 극적으로 전시회에 참가한다. 왜일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전시회 참가 자체가 기업의 Reputation, 즉 평판을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이 이번에 CES에 참가합니다’, ‘우리가 이번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행사에서 피칭 무대에 올랐습니다’라는 경력이 투자자와 바이어의 시선을 바꾼다. 전시회는 이제 거래의 장소가 아니라 평판의 무대가 된 것이다.


가장 단적인 예가 바로 CES의 Innovation Award이다. 사실상 한국기업들의 CES 참가 목적은 이 혁신상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오죽하면 CES Award 인플레 현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기업들의 CES 사랑은 차고도 넘친다. 어찌 보면 이것은 당연하다. CES의 Innovation Award 수상은 그 타이틀 자체만으로도 글로벌 혁신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얻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업들은 이 혁신상 수상 타이틀을 각종 마케팅 자료와 웹사이트, 명함에 새긴다. 테크 크런치의 피칭 대회 역시 마찬가지다. 기업들이 이 피칭 무대에 오르는 것만으로도 ‘투자할 가치가 있는 스타트업’으로 인식된다.


결국 좋은 전시회는 참가기업에 거래의 기회가 아니라 평판 자산을 제공한다. 이것이 지금의 전시 주최자가 이해해야 할 새로운 진실이다.


좋은 전시회의 조건: 참가만으로도 기업 평판이 오르는 구조를 만들어라.


그렇다면 어떻게 기업들의 평판을 올리는 좋은 전시회를 만들 것인가? 핵심은 치밀한 설계에 있다.


먼저 선별적 참가기준과 큐레이션이 핵심이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전시회는 참가 자체로 평판을 만들 수 없다. ‘이 전시회에 참가했다’라는 것이 특별한 의미를 가지려면 참가 기업 선발이 엄격해야 한다. CES의 유레카파크는 혁신성을, 밀라노 디자인 위크는 창의성을, 그리고 다보스 포럼은 전 세계에 미치는 영향력을 기준으로 참가자를 선발한다. 기준이 명확할수록 그 기준을 통과했다는 사실이 큰 평판을 만든다.


둘째 미디어 주목도와 업계 영향력을 설계해야 한다. 전시회가 언론에서 얼마나 다뤄지는가, 업계 리더들이 누가 얼마나 참석하는가가 참가 기업들의 평판을 결정한다. 주최자는 기자들이 취재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이 참석할 이유를 제공해야 한다. 단순히 전시회를 개최하는 것이 아니라, 뉴스가 될 만한 순간들을 기획해야 한다.


셋째, 평판을 증폭시키는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어워드, 피칭 무대, 기업 세션 등이 그것이다. 이런 장치들은 참가 기업에게 ‘우리는 이 전시회에서 이런 성과를 얻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빛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준다. 부스를 벗어나 전시회의 모든 장치를 활용할수록 그 이야기가 참가 기업의 웹사이트, SNS, 투자 피칭 자료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평판을 만드는 것이다.


주최자 중심에서 참가자 중심으로: 전시회 기획의 패러다임을 전환하라.


그러나 여전히 한국의 전시산업은 공급자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전시장 규모가 대형화되어야 글로벌 전시회 유치가 가능하다거나, 전시회의 경제적 파급효과를 위해 대형 전시회가 필요하다는 지극히 양적 논리에 집착한다.


그러나 진짜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참가 기업들은 이 전시회 참가를 통해 어떤 평판을 얻었는가?’


참가기업의 성장이 곧 전시회의 성장이다. 전시회에 참가했던 스타트업이 대규모 투자를 받았다면 그것이 그 전시회의 성과다. 참가기업이 해외진출에 성공했다면 그것이 곧 그 전시회의 가치다. 이런 성공 스토리가 쌓일수록, 더 좋은 기업들이 참가하고 싶어 하고 더 많은 바이어와 투자자가 찾아오고 더 많은 미디어가 주목한다. 이런 선순환이 글로벌 전시회를 만들고, 대형 전시 인프라를 필요로 하게 된다.


따라서 한국 전시 주최자들은 이제 다음 질문에 답을 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첫째, 참가기업 선정에 명확한 기준이 있는가 둘째, 참가 기업이 자랑할 만한 성과지표가 있는가 셋째, 미디어와 업계 리더들이 주목하는 순간을 만들고 있는가 넷째, 전시회 이후에도 평판 효과가 지속되는가


이 질문들에 자신 있게 ‘예’라고 대답할 수 있다면 이미 이 전시회는 기업들의 평판을 만드는 플랫폼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전시회 주최자는 행사 기획자가 아니다. 평판 설계자이자 브랜딩 파트너이며 기업의 성장 촉매제이다. 참가기업들이 ‘이 전시회에 참가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그것이 곧 전시 주최자의 새로운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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