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의 전시 마케팅 노하우
최근 2-3년간 화두가 되어버린 디지털 테크놀로지 - VR, 증강현실, IoT, 로봇, AI, 3D 프린팅 등 - 는 마치 미래의 신기술이 온 세상을 쥐고 흔들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충분하다. 가상공간과 현실 공간의 구분이 사라지고, 로봇이 지배하는 세상을 준비하라는 듯 여기저기서 '4차 산업혁명과 ___ 산업'이라는 주제의 세미나가 성황이다. 주최자는 이 화두를 잡지 못하면 출발선에서 뒤처지기나 할 듯이 위태로운 눈빛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은다. 그렇다면 마케팅 차원에서 수고로운 발품과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전시회라는 전통적인 매체도, 결국 시공을 초월하는 테크놀로지에 의해 사라지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전시회라는 매체는 디지털 테크놀로지가 아무리 발전해도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전시회의 본질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보통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비즈니스라고 이야기한다. 보고, 만지고, 맛보고 체험하는 정서적 매체인 전시회는 인류가 물물교환을 시작한 이래로 교역의 장으로 끊임없이 발전되고 확대되어 왔다.
데이비드 색스는 그의 책 ‘아날로그의 반격’에서 포스트 디지털 세상을 추적하였다. 바로 LP, 필름, 종이, 오프라인 매장의 증가와 같은 디지털과 정 반대되는 아날로그의 반격이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디지털에 대한 식상함이나 옛것에 대한 그리움으로 과거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주 소비자인 20대는 태어날 때부터 세상이 디지털이었기 때문에 LP나 필름 카메라, 몰스킨 노트와 같은 물건이 ‘쿨’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즉 아날로그가 디지털 이후의 세상에 다시 회귀하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전시회라는 매체 역시 바로 이 아날로그 매체라는 관점에서 그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전통적 개념의 물건을 사고파는 교역의 장이라기 보다, 오히려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과 재밌는 '꺼리'를 찾는 놀이 공간으로 전시회를 찾는 젊은 세대들의 증가도 같은 맥락이다. 최근 10년간 카페쇼, 베이커리쇼, 캠핑쇼, 여행박람회, 방송영상기자재전 등 소비재 전시회가 급성장한 것도 전시회의 성격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VR(가상현실)이나 AR(증강현실) 등의 기술은 전시회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예술 전시이건 산업전시이건, 새로운 형태의 방식으로 전시품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기획자와 소비자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면서 곳곳에서 이러한 전시회+디지털 테크놀로지의 접목은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콘텐츠 기업 포스트비주얼은 이니스프리의 VR을 제작, 이니스프리 홍보관 및 전시회에서 VR 체험존을 선보였다. 모델인 이민호가 마치 나의 연인이 된 것과 같은 환상을 주어 아시아 팬들의 큰 관심을 받았다. 이 체험 영상은 별다른 광고를 하지 않았음에도 1,000만 뷰 이상을 달성했다. VR 체험존은 한국, 중국 등 아시아 국가로 매장 및 전시장에 확대 중이다.
기업의 제품 홍보를 위한 콘텐츠뿐 아니라 아트쇼에서도 이런 디지털 테크놀로지와의 접목은 현재 진행형이다.
‘구글과 함께하는 반짝 박물관’은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어린이박물관에서 진행 중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구글 아트 앤 컬처와 함께 마련한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초 오프라인 체험장이다. 인공지능 기술(AI), 가상현실(VR)·360도 영상, 기가픽셀 이미지 등을 활용해 한국과 세계의 문화유산,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도록 했다.
한남동 디뮤지엄에서 최근까지 열렸던 샤넬 전시회에서는 AR(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문을 찍으면 가상으로 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디자이너가 의상을 제작하는 가상세계가 펼쳐졌다.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과거와 현재 공간의 연결 개념이다.
음악을 듣는 방식은 지난 20년간 획기적으로 변해왔다. LP에서 CD로, mp3에서 이젠 무선 스트리밍이 대세다. 10년 전만 해도 아이튠즈로 다운로드한 음악을 아이팟에 담아 다니던 것이 트렌드였지만, 이제는 누구도 다운을 받지 않는다. 그 후 나온 무선 스트리밍은 획기적이었지만, 이젠 다시 당연한 일상재가 되어 버렸다.
지금 VR, AR, IoT가 뉴 테크놀로지로 각광받지만, 이 기술들은 머지않아 흔하디 흔한 일상재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이미 스마트폰으로 누구나 360도 VR 촬영을 할 수 있고 구글 카드보드로 만든 VR 기어는 쇼핑몰에서 2,500원이면 살 수 있다.
누구나 제작하고 보유할 수 있는 이런 기술들을, 전시회에서 활용한다면 분명 그것은 일상재와는 달라야 할 것이고, 그에 대한 해답은 결국 콘텐츠의 차별화밖에 없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런던 소머셋 하우스 갤러리의 전시 기획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의미심장하다.
"It’s been anticipated that at some point we’ll all have a headset in our homes. So if you use it in a public art & exhibition space, you’ve got to think about what it’s adding."- Jonathan Reekie, the director of Somerset House.
기업이 브랜드 마케팅을 한다는 것은 브랜드화된 콘텐츠(Branded Contents)를 제작하여 널리 확산한다는 의미와 동의어이다. 하드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가 중요한 시대, 기술이 아니라 콘텐츠가 중심이 되어야만 차별화할 수 있는 기술 민주주의 - 보편적 기술의 소유 - 시대가 온 것이다.
누구나 VR 기어를 소유하는 시대에, 전시회에서 이런 기술을 사용하려면 무언가 특별한 것이 더해져야 한다. 결국 테크놀로지는 정서적 경험을 공유하는 전시회에 차별화된 콘텐츠를 생산하고 보완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때 그 의미가 더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