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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형주 David Lee Jul 08. 2018

독일의 전시산업은 왜 강한가?

미텔슈탄트(Mittelstand) - 강한 중소기업들이 전시회를 지탱한다

결과보다 과정을 들여다 보라.


대게 누군가 부자가 되었다는 기사를 보면 순간적인 부러움과 함께 묘한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 회사를 매각하여 수백억의 현금을 거머쥔 사업가, 수십억의 광고료로 편하게 사는 연예인 등, 미디어가 생산해내는 기사들은 잘 살고 있는 우리의 마음 상태를 건드려 결국 '나만 왜 이렇게 못살까'라는 자괴감에 빠져들게 한다.

하지만 미디어는 성공한 기업가가 어떻게 해서 가치 있는 회사를 만들었는지, 어떻게 가수나 배우가 혹독한 자기 수련의 과정을 거쳐 빛나는 스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다. 과정보다 결과만을 놓고 찬사를 보내지만, 중요한 건 어떻게 성공했는가 하는 '과정'을 더 들여다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얼마 전 독일이 어떻게 전시산업의 강국이 되었는가라는 주제로 KBS에서 방송한 것을 보았다. 전시산업의 중요성에 대하여 강조한 내용이었지만, 과정에 대한 분석은 없고 전시산업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니 매우 중요한 산업이라는 내용으로 끝을 냈다. 이런 식으로 결론을 내면, 정부의 전시산업 정책 담당자는 결국 또다시 전시산업 발전을 위해 전시장을 확충하고, 바이어 유치를 위해 전시지원금을 확대하고, 전시서비스를 개선하자는 취지의 뻔한 정책을 만들어 낼 것이다.


독일 경제 성장의 비결 - 34만 개의 미텔슈탄트가 든든하게 떠받치다.


독일 경제의 중심에는 미텔슈탄트(Mittelstand)가 있다. 미텔슈탄트는 독일의 중견 중소기업들을 말하는데 이들은 경쟁업체가 모방하기 어려운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수많은 혁신을 주도한다. 미텔슈탄트는 '히든 챔피언'이라 불리는 글로벌 강소기업과 연매출 650억 원 이상의 가족기업, 그리고 중소기업을 포함하여 약 34만 개의 기업들이 포함된다. 이런 중소기업들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특정 시장과 고객에 집중한다. 독일 중소기업들 사이엔 '코끼리가 춤추는 곳에서 놀지 말라'라는 말이 있다. 중견, 중소기업이 대기업이 노는 곳에서 놀면 안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들 기업은 규모를 키우는 대신  한 분야에 집중한다. 시장을 좁고 깊게 정의하다 보니 전문인력이 중요하고, 사람 관리에 집중하다 보니 미텔슈탄트의 이직률은 연 2.7%로 매우 낮다. 두 번째, 시장을 좁고 깊게 정의하는 대신 글로벌 시장 진출에 초점을 맞춘다. 세계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고객에 대한 정밀한 타겟팅이 필요하다. 타겟  고객의 수요와 필요성을 정확히 파악하여 제품 경쟁력 개발에 반영한다. 독일 기업들이 왜 수출에 능한가에 대해 '히든 챔피언'의 저자 헤르만 지몬은 유럽의 전통적인 소국 분리주의 때문이었다고 했다. 유럽의 국가들이 서로 독립되어 있고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여건이 국경을 넘어 활발한 대외 교류의 원동력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개방성이 자유로운 무역거래에 능하게 만든 것이다.  


산업용 식기 세척기 제조업체인 독일의 가스트로놈은 원래 학교, 병원, 구내식당 등에 물건만 공급하다가 나중에는 호텔과 레스토랑에 집중하고 식기세척기 외에 물 준비 장치, 세척제, 관련 서비스를 함께 제공했다. 단순 식기세척기 제조회사에서 고객의 그릇과 유리잔을 깨끗이 씻는데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함께 공급하는 기업으로 타깃팅을 명확히 한 결과였다.

가스트로놈의 서비스 제공 깊이


독일 전시산업은 왜 강한가 - 세계 최고의 중소기업들을 위한 무역 교류의 장


전시회란 무엇인가? 결국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사고자 하는 바이어들이 만나는 장이다. MICE라 하는 모든 형태의 이벤트(미팅, 기업행사, 전시, 이벤트)는 모두 '만남'이라는 주제 하에 묶인 것이다. 이렇게 만남을 위한 장으로서 전시회가 성공하려면 결국 만날 가치가 있는 기업들이 나와야 하고, 가치 있는 다양한 형태의 기업들이 많을수록 전시회는 성공한다.


이러한 간단한 논리로 본다면 독일 전시산업의 성공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세계적으로 기술력이 뛰어난 중견중소기업들이 많고, 또 대부분 세계 최고의 기술과 제품을 보유하다 보니 전 세계에서 이런 '미텔슈탄트'와 거래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양한 미텔슈탄트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전시회밖에 없는 것이다. 아래 그림은 독일의 지역별 히든챔피언 분포도를 표시한 것이다. 히든 챔피언이 분포된 지역을 점으로 표시했다.

독일의 히든챔피언 분포도('히든챔피언'에서 인용-헤르만지몬)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산업별로 히든챔피언이 분포한 지역에 대표적인 전시장이 위치해 있고, 또 산업을 대표하는 전시회들이 개최되고 있다는 점이다. 슈투트가르트는 혁신 기술 기업들이 많고 그와 연관된 MedTec이란 의료기술 전시회가 열린다. 베를린은 베를린 메세에서 세계 최고의 전자전시회인 IFA가 열린다. 전시장이 먼저 들어선 것이 아니라, 중소기업들이 분포되어 있는 곳에 전 세계의 비즈니스맨들의 교류를 위한 전시장과 전시회가 생겨난 것이다.  

독일 히든 챔피언 분포와 전시장의 위치가 일치한다.


Germany. Expertise. 캠페인


독일 컨벤션 뷰로(GCB: German Convention Bureau)는 독일 전시산업 발전의 강화를 위해 'Germany. Expertise'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독일 지역 전체를 주요 산업 거점별로 구분하고, 거점별로 분포되어 있는 기업과 협단체 등의 정보를 제공한다. 그리고 전시회를 개최하는 주최자에게는 그 지역의 오피니언 리더나 리딩 기업을 연결시켜서 기조연설 및 포럼의 스피커로 추천한다. 자연스레 전시회나 컨벤션 콘텐츠의 질이 올라가게 되고 그에 따라 행사 참여자나 참가기업의 수가 확대된다.

왼쪽은 GCB의 전시회 지원을 위한 홍보물이고 오른쪽은 지역별 히든챔피언 분포도이다. 전시산업 지원이 히든챔피언 분포와 같이 감을 알 수 있다.


독일은 전시산업 육성을 위해 강제적인 정책을 취했다기보다 오히려 산업별로 경쟁력 있는 도시를 분류하고, 그에 따른 전시회 지원 정책을 펼쳤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전시 주최자는 대게 베뉴나 도시를 선택할 때 해당 장소의 특성을 도시나 베뉴 마케터보다 먼저 파악하고 있다. 따라서 베뉴나 컨벤션뷰로의 역할은 억지로 도시를 홍보할게 아니라 기업들과 고객이 도시나 베뉴에 대해 어떤 이미지와 특성을 파악하고 있는지 조사해서 이를 잘 포장하고 어필하면 되는 것이다.


메세 프랑크푸르트나 메세 베를린 등 전 세계에 전시 회사를 설립하고 전시회의 해외 진출을 추진하는 것도 어떻게 보면 미텔슈탄트의 세계시장 진출 동기와 비슷하다. 고유의 경쟁력을 바탕으로 전문 분야에서 세계로 무대를 확대하는 독일 미텔슈탄트의 특징 - 그것이 바로 독일의 전시기업이 세계로 진출하는 이유와 다름 아닐 것이다.


독일 전시산업 발전은 전시산업 자체보다 세계 최고의 독일 중소기업들과의 교류 필요성이 그 원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면, 이제 질문은 자연스레 우리나라의 전시회, 또는 전시산업으로 넘어오게 된다. 한국 전시산업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 질문에 대한 우선 과제는 전시장 확충도, 전시서비스 개선도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중소기업들이 경쟁력 확보를 위한 지원이 우선이다.


전체 기업의 0.1%, '히든 챔피언 불모지대' 코리아


한국은 알다시피 중소기업이 설 자리가 없다. 한국 중견기업은 전체 기업의 0.1%로 독일(0.57%)이나 일본(0.55%)과 비교해 5분의 1 수준이다. 인구 100만 명당 강소기업 수를 보더라도 한국은 0.5개인 반면 독일은 16개이다. 한국은 왜 중소기업들이 성장하지 못하는가. 결국 해외 시장 진출에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내수가 작기 때문에 해외로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데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은 대기업 의존적이다. 독자적 기반이 아니라 대부분 삼성, LG의 협력사나 하청 생산을 한다. 그러다 보니 부가가치가 낮고 대기업에 종속된다.


중소기업을 위한  마케팅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


중소기업에 있어 전시회 참여는 매우 중요한 마케팅 활동이다. 대기업처럼 TV 광고를 많이 할 수도 없고 대형 이벤트를 통해 고객을 만날 수도 없다. 그러다 보니 전시회에 참가하여 바이어를 만나고 수출 계약을 진행하는 것이 그나마 비용 대비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대부분 전시회 참여를 위한 준비가 미흡하다. 어떻게 하는 것이 전시회를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것인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이를 위한 전시 주최자의 지원도 미흡하다. 는 지난겨울 디스플레이 전시회의 컨설팅을 통해 디스플레이 산업이 세계 1위임에도 디스플레이 산업 내 중소기업은 매우 취약한 경쟁력을 갖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삼성, LG 등 대기업과의 종속적 환경이 중소기업들의 세계 시장 진출에 불리한 구조다. 이런 현실을 반영하듯 디스플레이 전시회의 전체 참가기업 중 78%가 1-2 부스의 중소기업들임에도 불구하고, 전시회는 중소기업들의 실질적 비즈니스의 장 역할을 못하고 있다.

전체 참가기업의 78%가 1-2부스 규모의 중소기업이다.

어디 디스플레이 전시회뿐일까, 대부분의 우리나라 전시회들이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억지로 부스를 채워야 하는 전시 주최자와 이를 위해 공짜로 부스를 받아 전시회에 참여하는 중소기업들. 전시회가 진정한 비즈니스의 장으로 성장하려면 전시회 확장도 전시 서비스 개선도 급하지 않다. 중소기업들의 활발한 비즈니스를 위한 장으로 거듭나는 것이 우선이고, 이것은 하드웨어가 아니라 콘텐츠와 소프트웨어 적인 고민이 필요한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전시회의 정책 개발을 맡아야 한다.


전시산업 발전을 위한다고 더 이상 전시장 건립이나 지원금 확대에만 노력하지 말자. 이제는 중소기업들의 육성이 우선이고 이를 위한 수출 지원과 거래 기회 발굴이 우선이다. 전시회는 기업 입장에서 마케팅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전시회가 기업에 있어 꼭 필요한 마케팅 인프라로 쓰이길 원한다면 고민의 관점을 바꿔야 한다. 전시산업 발전의 원동력은 전시회에 참가하는 중소기업 육성이 우선이다. 따라서 전시회 발전 정책은 중소기업의 육성을 고민하는 중소벤처기업부가 맡아야 한다.


중소기업은 발굴되고 드러나야 한다. 전시회는 숨어있는 '히든챔피언'들이 글로벌 무대에 데뷔하는 당당한 쇼마케팅(Show marketing)의 장으로 활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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