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는 단순한 이야기였습니다. 토끼와 거북이.
나는 토끼였습니다. 빠르게 일하고, 신속하게 판단하고, 앞서 나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내 옆의 동료는 거북이처럼 보였습니다. 느리고 신중하며, 때로는 답답할 정도로 시간을 들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단순한 경주가 아니라 조직 전체가 그의 느림을 문제 삼고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고, 나에게 선택을 요구합니다. 기다릴 것인가, 설득할 것인가, 단호하게 단절할 것인가.
기다림은 인내를 필요로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해결해 주지 않는 문제도 있습니다. 조직의 불만이 쌓이고, 신뢰가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가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면, 기다림은 의미가 있겠지만, 만약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면 나는 답을 미루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릅니다.
설득은 가장 인간적인 방법입니다. 그에게 우리의 속도를 이해시키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동참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하지만 설득이 통하려면, 그가 변화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설득은 끝없는 논쟁과 지쳐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단호한 단절은 가장 쉬운 길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불편한 문제를 제거하고, 조직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죠. 하지만 정말 문제의 본질이 그의 느림일까요? 그가 떠나간다고 해서 조직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까요? 아니면 또 다른 ‘거북이’가 나타났을 때, 같은 선택을 반복할 것인가요?
결국 선택의 기준은 조직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입니다. 나는 속도를 절대적인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다양성을 인정하는 조직을 만들고 싶은 것인가? 단순한 업무의 효율이 아니라, 우리는 어떤 조직이 되고 싶은가?
어쩌면 정답은 기다림과 설득과 단절이 아니라, 균형일지도 모릅니다.
그를 기다릴 수 있는 만큼 기다리되, 조직이 무너질 만큼 오래 끌지는 말 것.
설득할 수 있는 만큼 설득하되, 변화가 불가능한 곳에서 허비하지 말 것.
단절해야 한다면 단절하되, 그것이 단순한 제거가 아니라, 성장의 과정이 되게 할 것.
결국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입니다.
그리고 내가 내려야 할 선택은, 단순한 결정이 아니라 조직이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일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