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책임 있는 자유

by 최정식

이번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은 단지 정치적 사건을 넘어,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라는 국가 최고 권력자가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군을 동원 한 행위는 헌법과 국민의 신뢰를 정면으로 위배한 중대한 사안이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를 만장일치로 인용하며, 자유로운 권한 행사에도 분명한 책임이 따름을 다시금 환기시켰습니다.


‘자유’는 우리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가치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자유가 책임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가치가 아닌 위협이 됩니다. 윤 전 대통령의 행위는 국가를 위한 판단처럼 보였을 수 있으나, 실상은 자신을 위한 무책임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는 심리학적으로 볼 때, 권력을 쥔 이들이 자주 빠지는 자기 정당화의 함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권력자는 때때로 스스로를 ‘국가의 운명을 짊어진 자’로 인식하며, 자신의 결정을 절대화하는 경향을 보입니다. 이는 결국 현실에 대한 감각을 잃고, 도덕적 판단 능력마저 흐리게 만듭니다.


철학적으로 보자면, 이 사태는 자유가 공동체와의 약속, 즉 사회계약 위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권력은 국민이 위임한 것이며, 그 권한은 철저히 헌법의 테두리 안에서만 정당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국가의 최고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안전을 위협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권한이 아니라 폭력입니다. 존 록크가 말했던 ‘정당한 정부는 국민의 동의에서 출발한다’는 명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유효합니다.


또한 이번 판결은 법치주의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법은 자유를 제한하는 장치가 아니라,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입니다. 법이 없다면, 권력은 자의적이 되고, 결국 약자의 자유는 언제든 무너질 수밖에 없습니다. 법이 대통령의 행동을 제한한 것은, 그가 시민들의 자유를 해치려 했기 때문이며, 그것이 바로 법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안타까운 것은,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올랐던 이가 스스로를 성찰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권력의 자리에는 끊임없는 반성과 윤리적 고민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측근들의 맹목적인 지지와 권력 구조의 폐쇄성은 그러한 내면의 반성을 차단합니다. 결국 자유는 ‘내면적 윤리’와 분리된 형식적 권한으로 남게 되었고, 책임은 흩어졌습니다.


자유는 결코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자유가 타인의 삶을 위협할 때, 그 자유는 반드시 조정되어야 하며, 그 조정의 이름이 바로 ‘책임’입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판결은 대통령 한 사람의 자격을 박탈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지켜야 할 자유의 윤리를 되묻는 선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나 연습되어야 하고, 자유는 언제나 반성과 함께할 때만 빛을 발합니다. 권력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책임 앞에 겸허해야 한다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깊이 있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keyword
이전 28화집단 트라우마, 치유는 가능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