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대통령 탄핵 선고 기일을 확정한 사실은 단순한 정치 절차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이는 국민 모두가 직면한 심리적 전환점이자, 공동체의 감정이 격렬하게 요동치는 계기가 됩니다. 이러한 현상은 정신분석학과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집단 트라우마(Collective Trauma)'의 개념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집단 트라우마란, 대규모 집단이 충격적인 사건을 함께 경험하면서 집단의 정체성과 감정, 기억 체계가 구조적인 흔들림을 겪는 현상을 말합니다. 이는 단지 전쟁이나 대형 참사에만 해당하지 않고, 국가의 윤리적 실패나 정치 시스템의 붕괴에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핵심은 고통 자체보다, 기존의 질서와 의미 체계가 무너지는 데서 비롯됩니다.
대통령 탄핵은 그 자체로 깊은 심리적 반응을 유발합니다. 대통령은 많은 이들에게 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탄핵은 권력의 종결을 넘어 국가 자존심과 도덕 기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지지자에게는 상실감과 배신감이, 반대자에게는 분노와 허탈함이 동시에 일어날 수 있으며, 이 과정에서 정체성의 균열이 생겨납니다.
또한, 탄핵은 정치·경제·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 불확실성을 초래하면서, 국민이 일상 속에서 느끼던 심리적 통제감까지 약화시킵니다. 사람들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불안과 무기력감을 경험하게 되며, 이러한 심리는 루머와 음모론, 극단적인 정서 표현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아울러 반복되는 정치 스캔들과 제도 실패는 제도에 대한 신뢰를 붕괴시키고, 냉소적 시선을 낳습니다. 헌재의 결정이 단죄로만 인식되지 않고 공정성의 시험대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집단 트라우마는 사건의 종결과 함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기억 속에서 지속적으로 재현됩니다. 이후의 정치 담론, 역사 교육, 언론 보도, 시민 대화 속에 반복되며, 다음 세대의 감정과 사고 방식에 영향을 미칩니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남아 있던 냉소와 분열이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상흔은 사회 집단의 무의식에 뿌리내리며, 향후 선택과 반응 양식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회복은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트라우마의 회복은 단지 시간이 흐르는 것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상처를 낳은 구조와 언어, 권력을 되돌아보고, 이를 공동체가 스스로 말하고 해석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언론, 교육, 문화가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동시에,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의 관점이 요청됩니다. 응징과 처벌을 넘어서, 왜 이러한 일이 발생했는지를 사회 전체가 숙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될 때, 분열은 치유로 전환될 수 있습니다. 대통령 개인의 책임만을 묻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 사회가 어떤 리더십을 요구했는지, 어떤 제도적 허점을 간과했는지를 함께 성찰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번 대통령 탄핵 선고는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심리적 분기점을 남길 가능성이 큽니다. 이 사건을 단지 승패나 정권 교체로만 해석하지 않고, 우리가 겪은 감정, 무너진 신뢰, 회복 가능한 희망을 되짚어보는 계기로 삼는다면, 이 집단 트라우마는 고통이 아닌 깊은 통찰로 전환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