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의 국제 질서는 더 이상 진영의 충성으로 설명될 수 없는 복합성과 유동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습니다. 냉전기의 이분법적 구도는 역사의 한 장으로 접혀가고 있으며, 오늘날의 국가 간 관계와 국내 정치 역시 복잡하게 얽힌 다층적 이해 속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를 포함한 다수의 민주국가에서는 여전히 진영의 논리가 공론장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대적 흐름과 명백히 어긋나는 움직임입니다.
진영은 정체성을 강화하고 결속을 촉진하는 데 일정 부분 기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 해결의 기제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유연성과 전략적 사고가 우선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국제정치의 핵심 변수는 진영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재배열과 유연한 협력의 구조입니다. 과거 미국의 트루먼 독트린이 ‘진영의 확립’을 목표로 했다면, 21세기의 외교 전략은 ‘연결망의 확장과 균형의 설계’를 핵심으로 삼습니다.
한국 사회의 내적 담론도 이제는 이 같은 세계적 변화에 걸맞게 재구성되어야 합니다. 특정 정파의 목소리만이 진실인 양 여겨지고, 반대의 견해는 즉시 적으로 규정되는 풍토는 정책의 실질적 유효성을 떨어뜨리고, 사회적 혁신의 속도를 지연시킵니다. 이는 단지 정치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전략적 민첩성을 저해하는 구조적 장애물입니다.
국제정치의 관점에서 보건대, 진영을 넘어선 사고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입니다. 이념이 아닌 결과, 충성심이 아닌 실용성에 기반한 접근이 요구되는 시기입니다. 특히 지정학적 균형이 요동치는 동북아의 맥락에서, 한국이 중견국으로서의 외교적 위상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내부적으로도 ‘진영의 벽’을 허물고 전략적 사고로 전환해야 합니다.
결국, 진영의 논리를 폐한다는 것은 곧 정치적 반응성을 넘어서는 전략적 사고의 정착을 의미합니다. 갈등을 최소화하고, 복잡성을 기회로 전환하며, 속도보다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국가와 사회가 되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일한 진영이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포섭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냉철한 사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