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파면되고, 야당 대표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지금, 정치의 언어는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습니다. 서로를 향한 비난과 조롱, 극단적인 단어들이 정치권을 지배하는 이 현실은 단지 일시적인 격랑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잔인함 자체가 정치의 전략이 되고, 살아남는 방식으로 굳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듭니다. 품격을 잃은 정치는 왜 이렇게도 강해 보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에서 무엇을 잃고 있는 걸까요?
공포는 언제나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국정 공백과 같은 정치적 불안은 사람들의 마음속 깊은 곳에 불안을 남깁니다. 이럴 때 사람들은 공감보다는 단호함을, 온기보다는 통제를 원하게 됩니다. "잔인하더라도 나라를 지켜줄 수 있다면 괜찮다"는 인식은 정치인의 언행이 거칠수록 오히려 신뢰를 주는 역설적인 현상으로 이어집니다. 실제로 위기 속에서는 정제된 언어보다 분노에 가까운 감정 표현이 ‘진심’으로 읽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그 진심은 유권자의 피로한 감정과 묘하게 겹쳐지며 지지로 이어지곤 합니다.
한편, 정치가 미디어와 SNS를 통해 소비되는 구조 속에서 자극은 생존의 조건이 됩니다. 정치인은 이제 정책보다 장면으로 기억되고, 조용하고 성실한 태도보다는 누군가를 몰아붙이는 강경한 모습이 더 많은 주목을 받습니다. 야당 대표의 대법원 판결조차 법적 의미보다는 정치적 승패의 관점으로 해석되며, 국민은 그 장면을 일종의 현실 드라마처럼 소비합니다. 정치가 쇼가 될 때, 잔인함은 강렬한 각본이 되고, 비판보다 환호를 얻기도 합니다.
제도적 한계 또한 이 현상을 가속화합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면 윤리적 비판은 무력화되고, 선거에서 승리하면 그 과정의 잔혹함도 정당화됩니다. 문제는 우리 민주주의가 권력의 정당성은 보장하지만, 권력 사용의 윤리성까지는 담보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탄핵 정국 이후 벌어지는 정치적 공방에서도 책임보다는 정략적 계산이 앞서는 모습을 보면, 제도는 윤리를 선별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더 심각한 것은 시민들의 피로입니다. 갈등과 스캔들이 일상이 되며, 정치는 점점 사람들의 일상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어차피 다 똑같다"는 냉소는 비판의 힘을 잃게 만들고, 그 순간 정치의 언어는 아무리 잔인해도 문제시되지 않게 됩니다. 잔인한 정치가 강해서가 아니라, 그 정치에 맞설 시민의 감각이 마비되어버렸기 때문에 살아남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잔인함에 익숙해지고, 비정상이 반복되면 정상처럼 느껴지는 감각의 마비 속에 살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정치인의 공격성을 통해 내면의 분노를 대리 만족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대신 해줬다”는 감정은 폭력적인 언행을 해방감으로 오해하게 만들고, 잔혹함이 대중적 지지를 얻는 아이러니를 낳습니다. 그 순간 정치와 유권자는 서로의 욕망을 정당화하는 관계로 얽히며, 공존보다 승리를, 대화보다 처벌을 우선시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 정치의 폭력성 앞에서 멈춰 서야 할 때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더 강한 정치인이 아니라, 더 깨어 있는 시민입니다. 정치는 결국 사회의 거울입니다. 그 거울 속에 날카로운 혐오와 감정의 칼날만이 비친다면, 그것은 정치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말해야 할 때 침묵하고, 물어야 할 때 고개를 돌린 우리 모두의 책임이기도 합니다. 잔인한 정치가 당연한 것이 되지 않도록, 다시 질문하고 다시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잃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