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교황에게 기대되는 것은 교리의 개혁 그 자체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하늘의 언어로 땅의 균열을 어루만지는 정치, 즉 시대와 함께 숨 쉬는 ‘신성한 정치’를 실현하는 일일 것입니다. 새 교황의 선출과 함께 다시 불붙은 가톨릭 교회 내 진보-보수 논쟁은, 단순한 교리 해석의 차원을 넘어섭니다. 이는 오늘날 종교가 세계 정치, 시민사회의 윤리, 나아가 민주주의와 인간 존엄성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개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시사적인 갈등 구조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글로벌 조직 가운데 하나입니다. 영혼을 다루는 조직이면서도, 실제로는 정치, 외교, 언론, 교육에 이르기까지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교황은 선출되는 순간 단지 한 종교의 대표자가 아니라, 세계를 향해 윤리적 언어로 말하는 초국가적 리더가 됩니다.
특히 최근 수십 년간, 교황청은 성소수자, 이민자, 기후위기, 경제 불평등과 같은 시대의 논쟁적 이슈들에 적극적으로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목소리를 '예언자적 용기'라 부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교회의 정치화, 또는 정통성 훼손이라 반발합니다. 이 지점에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신성한 정치'입니다.
'신성한 정치'란, 신의 이름으로 말하는 정치, 하지만 인간의 제도와 언어 안에서 작동하는 권력의 실상을 뜻합니다.
교회는 ‘진리’를 전한다 하지만, 누구의 해석이 ‘진리’로 받아들여질지는 조직 내 권력 관계에 따라 달라집니다. 교황의 메시지가 ‘복음’이 될지, ‘논쟁’이 될지는 국제사회와 내부 계층 구조의 반응에 따라 결정됩니다. 이처럼 종교 조직 내 갈등은 결국, 누가 대표 권위를 갖는가, 무엇이 공동체의 윤리 기준이 되는가, 그리고 어떤 언어로 세상과 소통할 것인가를 두고 벌어지는 정치적 경쟁입니다.
그렇기에 교황의 역할은 단순한 신앙 수호자가 아닌, 오늘날 세계가 요구하는 윤리 정치의 상징자로서의 위치를 요구받게 됩니다. 신성한 정치의 핵심은 여기에 있습니다. 초월의 언어로 땅의 갈등을 통합할 수 있는가. 교회는 더 이상 종교 내부의 일치만을 고민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사회 정의와 결합되지 못할 때, 종교의 언어는 폐쇄된 형식이 되고 맙니다.
오늘날 세계는 기술과 시장의 속도에 끌려가고 있지만, 그 속도에 생명을 잃지 않기 위해선 윤리와 경청, 책임의 언어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 언어를 아직 가장 넓게 구사할 수 있는 조직 가운데 하나가 바로 종교, 특히 가톨릭 교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