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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를 존중하는 지혜

by 최정식

살다 보면, 사소해 보이는 말 한마디나 행동 하나가 의외로 큰 파장을 일으키는 경험을 하곤 합니다. 누가 먼저 인사했느냐, 누구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었느냐, 혹은 회식 자리에 누가 중심에 앉았느냐 하는 것들은, 얼핏 보면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질서와 위계, 그리고 무엇보다도 ‘존중받고 싶은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가 바로 ‘상징자본’이라는 개념입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는 단지 돈이나 권력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존중받고 있는가’라는 보이지 않는 질서가 결정짓는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징자본이란, 말하자면 타인의 시선 속에서 부여되는 명예, 위신, 품격과 같은 자산을 뜻합니다.



우리가 자리 하나, 말투 하나에 예민해지는 이유는 단순히 그것이 '예의의 문제'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그 행동이 나라는 존재의 ‘가치’와 ‘위치’를 상징하는 지표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회의 자리에서 내 의견이 무시되었을 때, 그 감정은 그저 ‘내 말이 틀렸다’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 존재가 가볍게 여겨졌다’는 상징적 모욕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상징자본은 언제나 비교 속에서 작동합니다. 내가 받는 대우가 다른 사람에 비해 낮다고 느껴질 때, 비로소 그 자본의 부족이 고통으로 인식됩니다. 그래서 작은 이익도, 그것이 ‘존중의 신호’로 읽히는 순간, 사람들 사이에 큰 긴장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인정받고자 애쓰고, 때로는 말없이 경쟁합니다. 이러한 투쟁은 결코 나약함의 증거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이 누구보다도 ‘사회적 존재’이며, 자신이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로 여겨지길 바라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일로 보이는 갈등 속에서도, 그것을 존재의 무게에 관한 문제로 바라볼 때 비로소 이해와 배려의 문이 열립니다. 누군가의 말투가 날카롭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단지 예의 부족이 아닌 인정받고 싶은 갈망일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과한 반응은 그가 상징자본을 지키려는 몸부림일 수 있습니다.



작은 것에 깃든 위엄을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갈등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인간의 깊이와 상처, 그리고 바람을 품어 안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상징자본의 본질을 이해하는 태도이며, 존재를 존중하는 지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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