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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도와 파편의 문명, 그리고 인간

by 최정식

오늘의 문명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기술은 눈 깜짝할 새에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고, 정보는 실시간을 넘어 초실시간으로 쏟아집니다. 사람들의 삶은 이전보다 더 효율적이고, 더 편리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런 문명 속에서 우리는 점점 더 깊은 피로와 공허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현대 문명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단연 ‘속도’입니다. 더 빠른 통신, 더 빠른 물류, 더 빠른 의사결정이 경쟁력을 결정짓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이 가속화는 인간의 감정과 사유, 그리고 존재의 리듬까지도 덮어버리고 있습니다. 생각할 틈 없이 움직이다 보니, 삶은 점점 피상적이 되고, 의미는 소멸되어 갑니다.


또 하나의 특징은 ‘과잉’입니다. 정보도, 선택도, 자극도 넘쳐납니다. 그러나 넘치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합니다. 과잉은 곧 판단의 마비를 불러오고, 결국 사람들은 가장 손쉬운 방향으로만 흘러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자율은 강화되었지만, 내면은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파편화’ 또한 오늘날 문명의 중요한 속성입니다. 사회는 하나의 공동체라기보다는, 서로 다른 시간과 진실 속을 사는 개별 존재들의 집합체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세대, 계층, 지역, 가치관 모두가 제각각이고, 서로를 이해하기는커녕 접점조차 찾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신뢰와 연대의 기반을 흔들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술 의존’이라는 또 하나의 흐름이 있습니다. 인간은 이제 기억조차 기술에 맡기고, 감정의 처리와 판단마저도 알고리즘에 기대고 있습니다. 기술은 분명 편리함을 제공하지만, 그 편리함이 인간의 능력과 주체성을 무디게 만들고 있습니다. 기술이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에 종속되는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사람들은 이제 ‘자기 자신’을 브랜드처럼 포장하며 살아갑니다. 보여지는 이미지가 존재를 대신하게 되었고, 진정성은 점점 더 찾아보기 어려워졌습니다. SNS는 소통의 도구이기보다는, 스스로를 전시하고 타인의 반응으로 존재를 확인하는 무대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문명의 흐름 속에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속도에 휘둘리는 삶이 아닌, 속도와 ‘리듬’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삶을 설계해야 합니다. 느림은 무능이 아닙니다. 오히려 깊이 있는 사유와 감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입니다. 개인의 삶 속에서도, 조직의 문화 속에서도 의도적인 ‘느림’의 공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넘치는 정보와 선택지 앞에서 스스로의 ‘기준’을 세우는 능력이 요구됩니다. 판단의 근육은 적절한 제한 속에서 길러집니다. 덜 소비하고, 덜 반응하며, 더 많은 의미를 찾는 방식으로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파편화된 사회 속에서는 ‘공통의 서사’를 복원하려는 노력이 절실합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감정을 공유하고,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연결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 과정에는 공감, 경청, 그리고 관점의 다양성이 존중되는 문화가 필요합니다.


기술과의 관계도 재정립되어야 합니다. 기술은 인간의 도구이지, 인간의 대체물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기술을 도입할 때마다 “이것이 인간에게 어떤 가치를 주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며, 인간 고유의 능력—예를 들면 공감, 창의성, 윤리적 판단 등—을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보여지는 존재가 아니라, 살아내는 존재여야 합니다. 내면의 성찰과 감정의 진실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관계는 팔로워 수가 아니라, 서로의 삶을 진심으로 마주하는 깊이로 측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대는 단지 기술과 속도의 시대가 아니라, ‘인간성을 다시 묻는 시대’입니다.
진정한 문명의 성숙은 더 빠르게, 더 많이가 아니라, 더 깊이, 더 진실하게 살아가는 데 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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