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어느 날, 예고 없이 삶에 닥쳐옵니다. 병이 찾아오고, 관계가 끊기고, 붙들고 있던 질서가 무너지는 일들이 그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이러한 고난은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되곤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는 끝나고, 어떤 의미에서는 지나가는 폭풍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남는 것, 바로 고통은 다릅니다.
고난은 일어나는 것이지만, 고통은 남아있는 것입니다. 몸에, 마음에, 때로는 관계 속에 깊이 각인되어 오래도록 머뭅니다. 고난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이지만, 고통은 내부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학적으로 이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개념은 무엇일까요?
저는 그 해답을 ‘기다림’이라는 말에서 찾고자 합니다.
고통을 겪는다는 것은 단지 참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을 안고 살아내는 것, 곧 몸으로, 존재 전체로 기다림을 감당하는 삶의 태도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은 모두 이 기다림의 사람들입니다. 욥은 고난이 지나간 뒤에도 친구들의 몰이해와 내면의 침묵 속에서 오랫동안 하나님을 기다렸습니다. 십자가 위 예수께서 남기신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외침은 고난의 끝자락에서 터져 나온 고통의 언어이며, 바로 그 순간이 하나님을 향한 체현된 기다림의 정점이었습니다.
기다림은 단지 시간이 흐르기를 바라는 수동적 상태가 아닙니다. 그것은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품에 안고 살아내는, 믿음의 깊은 행위입니다. ‘몸으로 기억하고, 몸으로 소망하는’ 삶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 때로는 이 기다림이 침묵일 수도 있고, 눈물일 수도 있으며, 희미한 기도 한 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하나의 고백입니다. “나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신앙은 종종 ‘이미와 아직 사이’를 살아가는 여정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구속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그 틈 사이에 놓인 우리의 삶은 고통 속에 머무는 기다림의 연속입니다. 하지만 그 기다림이 단지 고통에 매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통을 품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라면, 우리는 그 안에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고통이 남아있는 자리에서 묵묵히 기다리고 계신 분이 계시다면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그 기다림의 자리는 헛되지 않습니다. 그 기다림은 하나님께서 가장 깊이 가까이 오시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