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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유지(Boundary Maintenance)

by 최정식

살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경계를 넘나들 때가 있습니다. 일과 사생활의 경계, 나와 타인의 경계, 그리고 내면의 감정과 이성 사이의 경계까지—이 모든 경계는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기준이자 지켜야 할 질서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때때로 경계를 허무는 것을 성숙함이라 여기거나, 유연함이라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경계 유지’는 단절이나 고립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지키기 위한 가장 본질적인 태도이며, 삶을 건강하게 구성해 나가기 위한 내적 규율입니다. 타인의 감정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불필요한 기대와 상처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여기까지’라는 선을 정하고, 그 선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경계가 없으면 삶은 쉽게 뒤엉깁니다. 일에 몰두하느라 가족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느라 내 마음을 외면하게 되고, 타인의 요구에 무작정 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잃고 맙니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 선을 넘는 것이 지금 정말 필요한가?”라고요.


경계를 유지한다는 것은 곧 내 삶의 중심을 지키는 일입니다. 사람 사이의 적정한 거리, 업무와 휴식의 건강한 구분, 말과 침묵 사이의 균형—이 모든 것이 경계를 유지하는 삶의 지혜입니다. 경계를 지킨다는 건 결국 ‘자기 삶의 품격을 지켜내는 태도’이며, 타인에 대한 존중이기도 합니다.


세상은 자꾸만 경계를 허물라고 말합니다. 더 열려야 한다고, 더 융합해야 한다고, 더 가까워져야 한다고요. 물론 그 말이 틀린 건 아닙니다. 하지만 진짜로 가까워지기 위해선, 먼저 선을 지킬 줄 알아야 합니다. 선을 지킬 줄 아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선을 넘을 줄도 알게 됩니다.


삶이 복잡하게 느껴질 때, 마음이 흔들릴 때, 자신이 너무 작아 보일 때, 스스로에게 되묻는 시간을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나는 어떤 경계를 지키며 살고 있는가?”

이 질문 하나가, 여러분의 삶을 한층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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