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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삶

by 최정식

정치는 거창한 권력의 언어만이 아닙니다. 정치는 “나 아닌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조건”을 성찰하는 일이며, 그 과정에서 우리는 정치적 인간(zōon politikon)으로 존재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정치적 인간의 삶이란 무엇이어야 할까요? 그 답은 바로 자기초월(self-transcendence)이라는 개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자기만을 위해 살 수 없습니다. 욕망이 아니라 의미와 책임, 그리고 타자와의 연대를 통해 존재의 방향을 찾는 존재—그것이 인간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정치적 품격은 자기 자신을 넘어 타자의 고통에 응답하고, 공동체의 미래를 설계하는 데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 자기초월은 단지 윤리적 미덕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조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정치가 왜 이토록 피로하게 느껴질까요? 그것은 정치가 국민의 자기초월적 가능성을 존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민을 수동적 ‘소비자’로 만들고, 당장의 이해득실만을 거래하는 구조 속에서는 공적 책임을 향한 도약, 즉 자기초월이 설 자리를 잃습니다. 정치는 원래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보다 나은 사회와 공존의 질서를 스스로 조직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이 자기초월적 정치의 핵심은 자유와 연대의 조화입니다. 참된 자유는 나만의 자유가 아니라 타자의 자유를 가능케 하는 자유이며, 진정한 연대는 동질성에 의한 결집이 아니라 차이에도 불구하고 함께 살아가겠다는 결단에서 비롯됩니다. 그 결단은 언제나 자기 자신을 넘어설 때만 가능합니다. 나는 옳다고 믿지만 타인의 관점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용기, 나는 손해를 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양보하는 품격, 이 모두가 자기초월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의 본질을 ‘행동하는 존재(homo agens)’라고 보았습니다. 그 행동은 ‘함께 세상을 구성하려는 노력’이자, 공동의 세계에 대한 책임 있는 개입입니다. 자기만의 생각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공적 공간으로 나아가 타자와 접속하고 갈등을 조율해가는 실천—그것이 곧 자기초월적 정치 행위의 핵심입니다.


지금의 한국 사회는 물질적 풍요에 비해 공적 품격의 공동체성은 위태로워 보입니다. 갈등은 곧 적대가 되고, 자유는 곧 무책임으로 탈바꿈합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제도 개편이나 정책 이전에, 정치적 인간으로서 자기초월의 회복입니다. “나의 삶이 타자의 고통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공동체를 위한 나의 몫은 무엇인가?” 이 질문이 개인의 울타리를 넘고, 정당과 제도를 통과하며, 공동체의 미래로 이어질 때—정치는 다시 인간다운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정치는 곧 인간의 자기초월입니다. 그 초월이 단절이 아니라 다름을 견디는 용기로 나타날 때, 민주주의는 비로소 살아 움직입니다. 자기 자신을 넘어설 때, 인간은 단지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완성됩니다. 그것이 우리가 회복해야 할 정치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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