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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열 절대화

by 최정식

서열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누가 윗자리인지, 누가 말을 먼저 해야 하는지, 누가 더 높고, 누가 더 아래인지. 이런 구조 속에서만 안정을 찾고, 그 안에서 자신을 규정하려는 사람 말입니다. 그들은 종종 그 질서를 통해 자신이 존중받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믿음이, 그들을 가장 깊은 몰락의 길로 이끌 수 있습니다.


서열에 의존하는 삶은 타인의 인정 없이는 존립할 수 없는 삶입니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타인의 평가에 기대는 순간, 자율적 주체가 아닌 타율적 존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렇게 높아진 자아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존중’이라는 허상 위에 세워진 탑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탑은, 생각보다 많은 이들의 질투, 경계, 혹은 냉소 속에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들은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모두가 자신이 몰락하기를 은밀히 바라고 있다는 것을, 끝까지 모릅니다. 왜일까요. 그것은 자기서사에 깊이 몰입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 자리에 마땅히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타인의 시선과 감정을 외면하게 만듭니다. 자신이 어떻게 보이는지를 돌아보는 대신, 어떻게 보이고 싶은가에만 집중하게 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자기 세계 안에서는 견제도, 위험도 필터링됩니다.


또한 몰락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지켜온 지위와 위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상상조차 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리하여 경고의 신호도 무시되고, 조용한 적대감도 감지되지 않습니다. 결국 무너질 때는 갑작스럽게, 그리고 고립된 채로 맞게 됩니다.


존재의 불안정함을 외부의 구조에 기대어 해결하려는 시도는 언젠가는 한계를 드러냅니다. 왜냐하면 그 구조는 타인의 인정과 지지가 있어야만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인정받지 못하는 순간, 구조는 무너지고, 함께 무너지는 건 바로 자신의 자존감입니다.


삶은 서열로 질서가 잡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로 숨이 트입니다. 진정한 안정은 위계의 정점이 아니라, 자신이 언제든 몰락할 수 있는 존재라는 자각에서 시작됩니다. 그 자각은 겸손을 낳고, 타인을 존중하게 만들며, 결국은 존중받는 길로 이끕니다.


높은 자리에 올랐을 때 필요한 것은 더 높은 벽이 아니라, 더 넓은 시야입니다. 모두가 지켜보는 자리일수록, 자기 자리의 불안정성을 아는 이가 진짜 리더입니다. 서열이 아니라 통찰로 자신을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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