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얇은 층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지는 구조물과도 같습니다. 하루의 말 한 마디, 무심코 지나친 표정 하나, 선택하지 않은 용서, 꺼내지 못한 감정들까지 이 모든 것이 층이 되어 우리 삶을 구성해 나갑니다. 그런데 이 층이 정직하게, 조화롭게 쌓이지 않으면 어느 순간 전체가 기울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기울어진 삶 앞에서 묻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많은 경우, 그 시작은 ‘첫 단추’에서 비롯됩니다. 한 번의 어긋난 말, 무심했던 반응, 혹은 진심을 외면했던 태도. 그것은 그 자체로 큰 잘못이 아니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위에 사과 없는 설명이 덧붙고, 변명 섞인 행동이 더해지며, 이해하지 않은 침묵이 쌓여갑니다. 그렇게 얇은 층들은 점차 무거워지고, 회복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인간관계뿐만 아니라, 삶 자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 한 번의 자기기만, 한 번의 도피, 한 번의 침묵이 삶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꾸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마주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 끼운 단추를 바로잡기 위해 서두르다 보면, 진정성이 결여된 행동들이 오히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덮는 것이 아니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삶은 무언가 거창한 한 걸음보다, 얇은 한 층을 어떻게 쌓느냐에 따라 그 방향과 깊이가 달라집니다. 하루의 태도 하나가, 관계에서의 말 한 마디가, 내면의 결심 하나가 그 다음 층의 구조를 결정합니다. 투명하게 쌓인 층은 단단함을 넘어서 유연함을 갖게 됩니다. 설령 균열이 생기더라도 금세 다시 맞물릴 수 있는 여유를 품게 되는 것이지요.
잘못 끼운 단추는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인생의 실패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긋남을 직시하고, 그 위에 진실한 마음과 용기를 쌓아갈 수 있다면, 삶은 더욱 깊고 단단한 형태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삶이 무너지는 이유는 커다란 위기 때문이 아니라, 얇은 층이 무너졌음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말과 태도, 침묵과 선택을 정직하게 바라보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삶의 의미는 다시 세워질 수 있습니다. 삶은 그렇게, 하루하루 쌓여가는 진정성의 층 위에 존재합니다.
* 기투성(企投性, Entwurf)은 하이데거 철학에서 인간 존재의 핵심 개념으로, 피투성(被投性)과 대비되는 개념입니다. 인간은 세상에 던져진 존재(피투성)로서 불안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만, 동시에 스스로의 삶을 선택하고 의미를 재구성하는 능력(기투성)을 가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