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한 동료가 오래전 겪은 ‘갑질’의 상처를 말없이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는 말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습니다. 모든 것이 지나간 듯 보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다시 불합리한 직장 상사를 마주하게 되자, 그의 마음은 다시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과거의 상처는 가라앉은 것이 아니라, 단지 얕은 호흡으로 잠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분노는 말로 표현되지 못하고, 대신 주먹으로 벽을 두드립니다. 파괴를 위한 행동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몸의 언어입니다. ‘이건 아니잖아’, 그 말이 되지 못한 외침이 손을 타고 나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결코 그 사람만의 일탈이나 유별남이 아닙니다. 이것은 억압된 정의감의 발현입니다.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불의의 기억이, 유사한 상황 앞에서 다시 깨어나는 것. 그건 어쩌면 '그때 말하지 못한 나 자신'을 지금이라도 구해내고 싶은 무언의 저항일지 모릅니다.
조직은 종종 위계와 침묵 속에서 ‘감정의 언어’를 사치로 여깁니다. 하지만 억압된 정의감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시된 감정은 신체를 통해, 행동을 통해, 때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되돌아옵니다. 그것은 괴이한 반응이 아니라, 인간다움의 마지막 울림입니다.
그렇기에 지금, 누군가의 손이 벽을 두드리는 그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그 손은 때리는 것이 아니라, 들어달라는 신호입니다. 말할 수 없었던 시간을 지나, 이제라도 말할 수 있기를 바라는 외침입니다.
정의감은 억압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그러나 강하게 돌아옵니다. 그리고 그 회귀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 하나입니다. 들어주는 것, 그 마음을 해석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것. 그것만이 분노를 통찰로, 억압을 회복으로 전환시키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