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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탁시(metaxy, μεταξύ)

by 최정식

갈등은 늘 극단 사이에서 생깁니다. 철학은 이 사이의 자리를 ‘메탁시(metaxy, μεταξύ)’라고 부릅니다. 메탁시는 한쪽을 서둘러 택하기 전에 양측 주장을 같은 테이블에 올리고, 어떻게 옳음에 도달할지 설계하는 태도입니다. 조직과 공동체에 필요한 것은 이 ‘사이에 서는 기술’입니다.


첫째, 절차가 내용만큼 중요합니다. 듣기–쟁점정리–기준확인–결정의 순서를 지키면 결과 수용성이 높아집니다. 사실만 강조하면 실행이 말라붙고, 가치만 말하면 공허해집니다. 사실·가치·행위를 함께 보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둘째, 맥락이 기준과 속도를 바꿉니다. 가족·회사·공공 영역은 요구되는 증거와 언어가 다릅니다. 단기 효율과 장기 일관성이 충돌할 때가 많습니다. 권력 격차가 큰 자리에서 형식적 중립은 왜곡된 평형을 만듭니다. 정보 사전 공유, 발언권 보호, 시간 배분, 독립적 진행 같은 장치로 실질적 평형을 보정해야 합니다. 메탁시는 무색무취의 중립이 아니라 맥락에 맞춘 설계입니다.


셋째, 심리적 장치가 필요합니다. 감정이 높아지면 판단 폭은 좁아집니다. 회의와 협상에서 짧게라도 멈춤–감정 명명–쟁점 재구성을 적용하면 사고의 폭이 넓어집니다. 사람과 문제를 분리해 사람은 존중하고 문제는 단호히 다루어야 합니다. 체면과 명분을 고려해 양보가 패배로 들리지 않도록 서사를 함께 설계할 때 합의는 오래갑니다.


넷째, 메탁시는 타협이 아닙니다. 상황에 맞는 적정(適正)을 찾는 일입니다. 폭력이나 중대한 권리 침해처럼 비대칭적 해악이 분명한 경우에는 양비론적 중립이 아니라 정의로운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 판단에 이르는 투명한 경로를 갖추는 것이 메탁시의 역할입니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경계를 투명하게 설계하는 일입니다. 투명한 경계와 건널 수 있는 다리를 함께 놓을 때 관계는 안전해지고, 결정은 ‘결정 가능한 상태’로 돌아옵니다. 갈등이 일상의 상수가 된 지금, 메탁시는 선택이 아니라 기본 역량입니다. 결론을 서두르기보다 과정을 정확히 세우는 것이 조직과 사회를 앞으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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