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해석

by 최정식

사람은 언제나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보고 있다고 믿지만, 실제로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해석한 결과물을 보고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목격해도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해석은 정보의 선택과 강조, 생략, 그리고 감정의 색채를 입히는 과정에서 한 개인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반영합니다.


이때 해석은 단순한 설명이 아니라 권력이 됩니다. 어떤 사건이 ‘실패’로 기록될지, ‘도전’으로 기억될지는 해석의 권한을 쥔 사람에 따라 달라집니다. 정치, 조직, 개인 관계 속에서 이 권력은 은밀하게 작동하며, 해석을 독점하는 순간 그 사람은 현실의 의미를 규정하고 사람들의 행동 방향까지 설정합니다.


그러나 해석의 권력은 양날의 검입니다. 자기 확증을 위해 해석을 일방적으로 고정하면, 그 왜곡은 진실로 향하는 길을 막아버립니다. 반면, 해석을 통해 새로운 관점과 가능성을 열어간다면 그것은 기존의 틀을 넘어서는 창조의 힘이 됩니다.


삶의 의미는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했는가’에서 더 크게 형성됩니다. 해석의 권력을 가진다면 그것을 배타적 확증의 도구가 아니라 열린 이해의 창으로 사용해야 합니다. 현실의 주인이 아니라, 해석을 통해 현실을 빚어가는 존재임을 자각할 때, 해석은 왜곡의 함정이 아니라 의미의 통로가 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결단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