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한’ 발을 내디디는 일은 겉으로는 사소한 움직임에 지나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사르트르가 말한 ‘결단의 순간’ 속에서 그 한 발은 존재를 새롭게 규정하는 기점이 됩니다. 수많은 가능성이 마음속에 병렬로 놓여 있을 때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은 관람자에 머뭅니다. 그러나 한 발을 내딛는 순간, 모든 가능성은 하나의 현실로 수렴되고, 선택하지 않은 길들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이 발걸음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자유의 선언입니다. 외부의 강요나 압력 때문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한 방향이기에 그 결과는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 됩니다. 불확실성과 두려움이 함께하더라도, 그 한 발은 ‘나는 이렇게 살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창조하는 행위입니다.
결단의 순간은 언제나 고요하지만 무겁습니다. 그 전과 후의 세계는 결코 같지 않습니다. 전에는 가능성의 그림자 속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자신이 만든 길 위에 서게 됩니다. 단 한 발이지만 그 발걸음은 방향을 바꾸고, 세계의 지도를 새롭게 그리며, 나를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바꾸어 놓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발걸음의 크기가 아니라 그것이 향하는 방향입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내딛은 단 한 발이 인생 전체의 궤적을 새롭게 그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을 온전히 선택하고 책임지는 것이야말로 자유로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영광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