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래스카에서 열린 미·러 정상회담은 겉으로는 화려한 외교 무대처럼 보였지만, 실제 성과는 러시아의 전략적 승리로 귀결되었습니다. 푸틴 대통령은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 “정상 지도자”의 이미지를 회복하였고,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제시했던 제재와 압박의 카드조차 제대로 꺼내지 못한 채 장기 협상 구도에 동의하였습니다. 휴전이 아닌 “끝없는 평화협상”은 결국 러시아가 전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확보하도록 만든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번 회담이 드러낸 균형의 상실입니다. 국제정치에서 균형은 단순히 힘의 분배를 넘어, 동맹의 신뢰와 억제력, 그리고 규범적 질서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그러나 이번 회담에서 미국은 유럽과 우크라이나를 배제하였고, 동맹의 신뢰는 흔들렸습니다. 푸틴은 시간을 벌었고, 우크라이나는 더 큰 압박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균형이 무너질 때 국제사회가 치르게 되는 비용은 분명합니다. 첫째, 군사적 비용입니다. 억제력이 약화되면 전쟁은 확대되고 소모전은 길어집니다. 둘째, 경제적 비용입니다. 전쟁경제화는 공급망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에너지와 식량 가격을 끌어올립니다. 셋째, 정치적 비용입니다. 동맹국이 미국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되면 자체 핵무장이나 독자 노선을 선택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넷째, 문명적 비용입니다. 국경 불가침 원칙이 무너지면 침략이 보상받는 새로운 규범이 자리 잡게 됩니다.
헨리 키신저가 말했듯, 외교는 단순히 전쟁을 멈추는 기술이 아닙니다. 권력과 이익을 균형 있게 재배치하여 질서를 창출하는 행위입니다. 이번 알래스카 회담은 질서를 다지지 못했고, 오히려 균열을 확대하였습니다.
한국 역시 이 교훈을 유념해야 합니다. 동맹을 굳건히 하고, 다자 협력을 강화하며, 억제력을 확실히 유지하는 것만이 균형 상실의 값비싼 청구서를 피하는 길입니다. 균형의 상실은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 전체가 함께 치르게 되는 비용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