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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우마의 전이(轉移)

by 최정식

시간이 흘렀음에도, 과거 병적으로 권력을 휘둘렀던 인물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상상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듭니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며, 때로는 격한 행동까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인물을 보지 않았더라도, 그의 친분관계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자리에 배치되는 장면만으로도 같은 반응이 일어납니다. 마치 권력의 그림자가 다시 건물 안으로 스며드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심리학은 이를 트라우마의 전이라고 설명합니다. 과거의 상처와 억눌린 감정이 현재의 상황이나 사람에게 옮겨 붙어, 실제보다 훨씬 큰 위협으로 다가오는 현상입니다. 과거의 무력감은 현재의 장면 속에서 다시 자극되고, 그때 미처 하지 못했던 저항이 상상 속 격렬한 행동으로 보상되려 합니다. 이는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아직 봉합되지 않은 기억이 오늘 되살아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문제는 개인의 심리에서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권력자 한 사람의 병적인 행태가 남긴 흔적은, 정권 교체 후에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 인물과 얽혔던 사람들이 새 자리에 다시 앉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역시 권력은 변하지 않는다”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개인의 기억과 사회의 경험이 겹쳐지며, 과거의 그림자가 현재의 불안으로 재생산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트라우마의 전이는 잊으려 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고, 사회적으로 성찰할 때 현실과 상상, 과거와 현재를 구분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개인에게는 스스로의 분노와 불안을 ‘나의 상처가 아직도 남아 있음을 알리는 신호’로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회에는 과거의 잘못된 권력 행태를 반복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트라우마의 전이를 직면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는 일이자, 사회적 치유의 출발점입니다. 눈앞의 재배치가 단순한 인사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지난날의 고통을 되살리는 장면일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을 외면하지 않고 직시할 때, 개인과 사회 모두 과거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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