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경계갈등

by 최정식

조직이란 보이지 않는 선으로 구성된 공간입니다. 부서와 부서 사이, 역할과 책임 사이, 지시와 수용 사이에는 늘 ‘경계’라는 선이 존재합니다. 이 선은 질서를 유지하는 틀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갈등의 불씨가 되기도 합니다.


특히 리더십이 교체되는 시기에는 이 경계가 더욱 민감하게 흔들립니다. 새 지도자는 빠르게 균형을 잡으려 하고, 기존 질서는 조정되기를 요구받습니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는 권한을 지키려 애쓰고, 또 다른 누군가는 변화의 속도를 조절하려 하며, 실무자들은 그 사이에서 조용히 흔들리곤 합니다.


이 흔들림의 중심에는 늘 정체성의 충돌이 자리합니다. ‘누가 이 일을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단순한 권한 다툼이 아니라, 곧 ‘나는 누구이며, 어떤 책임을 지는 사람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경계가 겹치는 지점에서 마찰이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만 그 마찰이 갈등으로 치닫지 않으려면,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존중하려는 태도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결국 지시와 보고의 방식이 문제가 아니라, 그 이면에 담긴 존중의 온도가 조직의 문화를 결정하는 법입니다.


이렇듯 경계는 단순히 구분을 짓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할 간 조화를 위한 안내선이 되어야 합니다. 경계 위에서 마주칠 때, 상대를 향해 선을 그을 것인가, 손을 내밀 것인가는 조직의 성숙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조직이 흔들릴 때 경계 위에서 드러나는 것이 곧 리더십의 품격입니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용기 있게 목소리를 내는 이들, 조율하려 애쓰는 관리자까지—그 모든 이들이 경계 위에서 함께 균형을 잡을 수 있을 때, 조직은 비로소 단단해지는 법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양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