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시티는 수천 년의 역사를 품은 도시이고, 바닷가의 활기찬 시장과 학교, 카페가 공존하던 이 땅은,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삶의 터전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가자시티는 끝없는 전쟁과 보복의 악순환 속에서 폐허로 변했습니다.
키신저가 강조했던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주의에 따르면, 국가의 행동은 선과 악이라는 도덕의 잣대보다는 생존과 안보의 필요에 의해 설명됩니다. 이스라엘이 하마스의 공격에 대응해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이는 것도 국가의 존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행위가 곧 ‘선’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를 제거한다는 명분 아래 수십만 민간인을 삶의 기반에서 몰아내고 있습니다. 병원은 무너지고, 아이들은 굶주리며, 가족들은 하루하루 생존을 걱정합니다. 국가 안보라는 이름으로 감행되는 이 같은 파괴는 단기적으로는 위협을 제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더 깊은 원한과 불안정을 낳을 것입니다. 키신저식 현실주의적 시각으로 보자면, 이는 전술적 승리와 전략적 패배가 교차하는 지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선한가?”라는 질문은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냉정히 말하자면, 이 질문은 잘못 던져진 것입니다. 국가는 도덕적 선악보다는 안보와 이익의 계산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스라엘의 행위는 선함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냉혹한 합리성’의 발현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 합리성이 국제사회의 규범 속에서 얼마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만약 국제사회가 민간인의 대량 희생을 묵인한다면, 이는 곧 규범의 붕괴를 의미합니다. 힘 있는 자가 규범을 재정의하는 시대가 다시 열릴 수 있습니다. 가자시티의 폐허 위에서 다시금 키신저의 오래된 질문을 떠올리게 됩니다. “국가의 생존은 정당화될 수 있으나, 생존만으로 정당성을 얻을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