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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의 두려움

by 최정식

비행기 안에서 위급환자가 발생했을 때, 의사들이 선뜻 나서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살리려는 선의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게 끝나면, 법정에서 책임을 묻는 현실이 기다리기 때문입니다. ‘나섰다간 괜히 내 인생이 얽힐 수 있다’는 두려움은 손을 들어 올리지 못하게 합니다.


이러한 장면은 병원 진료 현장에서도 드러납니다. 꼭 필요한 치료라 해도 혹여 문제가 생기면 소송으로 이어질까 두려워, 안전하지만 소극적인 길을 택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른바 ‘방어적 진료’입니다. 의술은 생명을 살린다는 숭고한 의미를 품고 있으나, 두려움이 앞서면 그 의미는 빛을 잃습니다.


삶의 의미는 언제나 결과가 아니라 태도에서 비롯됩니다. 환자가 결국 목숨을 잃더라도, 혹은 내 행동이 오해를 불러올지라도, 그 순간 내가 두려움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가 곧 의미를 규정합니다. 빅터 프랭클이 말했듯, 인간은 외부의 상황이 아니라 그에 대한 태도로써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입니다.


이 모습은 의사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사회적 위기에서, 가정에서 우리는 자주 ‘괜히 나섰다 책임지면 어쩌나’라는 마음에 물러섭니다. 물러섬은 곧 안전을 보장하지만, 동시에 삶의 의미를 지우게됩니다.


결국 삶이란, 두려움 앞에서 주저앉을 것인가, 아니면 의미를 향해 한 발 내디딜 것인가의 선택입니다. 의사가 환자 앞에서 맞닥뜨리는 그 순간은, 우리 모두가 매일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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