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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정치

by 최정식

정치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앞서, 국민의 불안을 달래는 기술을 자주 활용합니다. 정상 간의 악수, 전쟁 종식 선언, 공동성명 같은 장면들은 실제 구조를 바꾸지 않더라도 위기가 완화된 듯한 안도감을 줍니다. 상징정치는 집단 불안을 줄이고, ‘우리’라는 정체성을 강화하며, 미완의 현실을 대체 만족으로 포장하는 장치라 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기술이 반복될 때, 장면이 곧 내용으로 착각되는 위험이 커진다는 점입니다.


상징정치가 작동하는 방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불안 관리입니다. 대중은 복잡하고 위험한 현실 앞에서 단순한 신호를 원합니다. 카메라 앞 서명식만으로도 “위기가 꺾였다”는 메시지가 즉각 전달됩니다. 둘째, 집단 동일시의 강화입니다. “우리 지도자가 세계의 박수를 받는다”는 이미지는 국민 자존감을 높입니다. 셋째, 대체 만족의 제공입니다. 완전한 해결이 요원할 때 “동결 합의”나 “실험 중단”과 같은 절충적 조치가 진전을 체감하게 만듭니다. 여기에 지도자의 과시욕과 인정욕구가 더해지면 상징은 막강한 정치 자산으로 변합니다.


그러나 그 효능은 곧 부작용과 맞닿아 있습니다. 장면이 반복될수록 더 큰 장면이 필요해지고, 실질적 개혁은 뒤로 밀립니다. 상징정치가 체질화되면 사회는 마치 모든 것이 이미 해결된 듯한 착각에 빠지고 맙니다. 검증 가능한 폐기, 되돌릴 수 없는 조치, 촘촘한 감시 체계 같은 ‘하드 데이터’ 대신, 한 장의 사진과 한 줄의 문장이 여론을 지배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는 민주적 숙의의 빈곤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몇 가지 원칙을 분명히 세워야 합니다. 첫째, 지표를 장면보다 앞세워야 합니다. 무엇을 약속했는가보다 무엇이 실제로 이행되었는가가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 감정과 판단을 분리해야 합니다. 상징은 감정에 호소하기 때문에 정책 평가는 냉정한 체크리스트로 돌아가야 합니다. 셋째, 단기 위안과 장기 비용의 균형을 따져야 합니다. 오늘의 안도감이 내일의 고착화를 낳지 않도록, 이벤트가 제도 개선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반드시 마련해야 합니다.


정부는 상징을 쓰더라도 그것을 출발선으로 삼아야지, 결승선으로 삼아서는 안 됩니다. 언론은 화려한 장면보다 검증 가능한 데이터를 우선해야 하며, 시민 역시 장면의 쾌감에 머무르지 말고 “그다음은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물어야 합니다.


상징정치는 불가피한 도구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좋은 정치는 상징으로 시간을 벌고 그 안에서 구조를 바꾸는 것입니다. 나쁜 정치는 상징으로 시간을 벌고 또 다른 상징을 준비할 뿐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화려한 무대가 아니라, 무대가 꺼진 뒤에도 남아 있는 검증 가능한 변화입니다. 상징은 진정제가 될 수 있지만, 치료는 데이터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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