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치를 바라보면 한 가지 독특한 역설이 눈에 들어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정적인 정치 체제를 가진 듯 보이지만, 정작 총리의 임기는 늘 짧고, 정권 교체는 잦습니다. 자민당은 1955년 창당 이래 거의 끊임없이 권력을 유지해왔지만, 그 속에서는 수많은 총리가 오르내렸습니다. 이 안정과 불안정의 동거야말로 일본 정치의 본질을 드러내는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일본 특유의 파벌 정치가 있습니다. 총리는 국민적 카리스마보다는 당내 파벌 간 합의와 조정의 산물로 등장합니다. 권력은 한 손에 집중되지 않고 파벌 간 균형 속에서 분산됩니다. 파벌은 다소 비효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일본 정치에서 그것은 권력 투쟁을 제도화하고 갈등을 봉합하는 기능을 해왔습니다. 총리 교체가 잦더라도 정당 체제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동시에 일본 정치는 전후 체제라는 조건 속에서 동맹 의존적 성격을 띠게 되었습니다. 군사적 자율성을 제한당한 일본은 안보를 전적으로 미국에 위탁했고, 이는 오늘날까지 일본 정치의 제약 조건으로 작동하고 있습니다. 외교와 안보의 큰 방향은 동맹을 벗어나기 어려웠고, 그만큼 일본 정치의 에너지는 국내 권력 관리와 조정에 집중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일본 정치의 구조는 내부적으로는 파벌을 통한 균형, 외부적으로는 동맹을 통한 안전 보장이라는 두 축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강력한 지도자의 돌파보다 조정과 합의가 중시되고, 비전의 정치보다 관리의 정치가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조가 영원히 안정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연이은 선거 패배와 리더십 붕괴가 보여주듯, 국민은 정치에 대한 새로운 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파벌과 동맹에 의존해온 정치가 다시금 국민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지, 아니면 변화의 압력에 밀려 새로운 균형을 모색해야 할지, 일본 정치는 지금 중요한 분기점에 서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