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세상을 떠난 뒤, 주변이 분주해진 모습을 보며 오래된 질문 하나를 다시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생전에는 미처 정리되지 못했던 평가들이, 사후에는 마치 결론이라도 난 듯 빠르게 정돈됩니다. 때로는 생전에 받았던 평가보다, 사망 이후 덧붙여지는 해석이 더 선명하게 들릴 때도 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보며 느끼게 되는 것은, 사후 평가란 고인을 위한 예의의 언어라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선택한 해석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인물의 삶이 갑자기 명확해진 것이 아니라, 사회가 그 인물을 어떻게 기억할지 결정을 내리는 순간에 가깝습니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덮을 것인지, 어떤 장면을 대표로 삼고 어떤 복합성은 생략할 것인지가 정해집니다.
그래서 사후 평가는 늘 고인을 말하는 형식을 띠지만, 실제로는 현재를 드러냅니다. 지금 이 사회가 무엇을 그리워하고, 무엇에 피로를 느끼며, 어떤 판단을 정리하고 싶은지가 그 평가 속에 스며듭니다. 말이 많아지는 이유도, 그 인물에 대해 더 할 말이 생겨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 지금의 자신을 설명하고 싶어지기 때문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