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의 영화 <<헤어질 결심>>은 치밀하게 얽힌 이야기 속에서 형사 해준과 용의자 서래의 관계가 단순히 범죄와 사랑의 경계를 넘어서, 철학적으로 타자와의 만남과 차이를 어떻게 수용하고 이해하는지를 보여준다.
영화에서 차이는 단순한 이질성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계관과 존재방식이 맞부딪히는 장면에서 부각된다. 해준은 질서와 규범에 의해 지배되는 인물로, 그의 세계는 명확한 선과 윤리적 판단에 의해 규정된다. 반면 서래는 이질적이고 불확정적인 인물로, 타자로서 해준의 삶에 등장해 그의 안정된 세계를 뒤흔든다. 서래의 존재는 해준에게 끊임없는 의심과 매혹의 대상이 되며, 타자성의 복합적인 성질을 드러낸다.
타자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레비나스는 타자를 단순히 나와 다른 존재로 보지 않고, 우리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여하는 절대적 타자로 여긴다. 영화 속에서 서래는 해준에게 그런 존재로 다가온다. 해준은 처음에는 서래를 조사해야 하는 형사로서 거리를 유지하지만, 그녀의 복합적이고 모호한 본성에 점차 휘말리게 된다. 서래의 말투, 행동, 그리고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은 해준의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하며, 그가 평생 지켜왔던 윤리적 규범과 충돌한다.
타자와의 만남에서 나타나는 이러한 불안과 흔들림은 인간이 타자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음을 시사한다.
또한, 서래는 차이로 인한 타자성을 강조하는 존재로 부각된다. 그녀는 이방인, 즉 외국에서 온 여성이며, 한국 사회 내에서 끊임없이 타자로 존재한다. 이로 인해 그녀는 문화적 차이와 언어적 차이로 인해 다른 인물들로부터 경계되지만, 해준에게는 이러한 차이가 그녀를 더욱 매혹적인 존재로 만든다. 해준이 서래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은 단순한 연민이나 호기심이 아닌, 그 차이 속에서 나타나는 불가해한 매력이다. 서래의 타자성은 단순히 다른 존재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해준의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한 욕망과 불안을 드러내는 거울이 된다.
영화는 바다와 산이라는 상징을 통해 이러한 차이와 타자성의 관계를 더욱 부각시킨다. 산은 고정되고 안정적인 해준의 세계를 상징하며, 그는 그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한다. 반면 바다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는 서래의 존재를 상징한다. 두 인물이 만나는 장소와 그들이 상호작용하는 방식은 차이의 조화와 갈등을 동시에 나타내며, 그들이 서로의 타자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을 보여준다.
헤어질 결심은 타자와의 관계가 단순히 이질적 존재에 대한 이해를 넘어, 자신의 정체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거울임을 시사한다. 해준은 서래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불안과 욕망을 발견하며, 그의 도덕적 기준과 현실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한다. 차이는 해준이 마주하는 모든 경험의 중심에 있으며, 그것은 그가 서래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게 만드는 동시에 그녀에게 이끌리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드러나는 해준의 선택은 그가 차이와 타자성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를 보여준다. 서래의 존재는 그에게 있어 절대적 타자이자, 그의 존재를 흔들어 깨운 존재였다. 그는 그 관계 속에서 도덕적 판단을 넘어선 새로운 자아와 마주하며, 타자와의 관계가 인간의 본질적 불완전성과 연결된다는 점을 깨닫는다.
헤어질 결심은 인간 관계의 복합성을 탐구하는 영화다. 그것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본질을 새롭게 인식하고, 스스로의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관객은 타자를 단순히 이해할 수 없는 대상이 아닌, 우리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존재로 받아들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