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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정식 Dec 15. 2024

송년의 다짐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를 내려가다 , 구걸하는 이를 마주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스쳐 지나가는 그의 모습은 마음에 작은 울림을 남깁니다. 그러나 그 울림이 행동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때가 더 많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망설여지게 됩니다. 때로는 "이 도움으로 무언가가 바뀔까?" 하는 의문이 들고, 또 때로는 "나는 지금 여유가 없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앞섭니다. 누군가는 "구걸하는 대신 일을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스스로를 납득 시킬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들은 어쩌면 자신을 위한 핑계일 수 있습니다. 도움을 주지 않는 선택이 마음에 불편함을 줄 때, 그 이유를 외부에서 찾으려 합니다. "구조적 문제니까 내 한 사람의 도움이 의미 없을 것이다." "내 사정이 나쁘니 지금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자신을 설득하며 죄책감을 덜어냅니다.


사실 도움을 준다는 것은 거창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동전 하나, 짧은 인사 한마디, 따뜻한 시선 하나가 그들에게는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설령 그것이 완벽한 해결이 아닐지라도, 순간의 친절은 우리가 줄 수 있는 가장 인간적인 선물입니다.


물론 모든 이에게 매번 도움을 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을 닫지 않는 것입니다. 나의 선택이 단순한 외면이 아니라, 진정성 있는 고민 끝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구걸인을 대하며 느낀 감정,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수많은 생각들을 핑계로 삼지 않아야 합니다. 그 모든 갈등과 고민이 결국에는 삶과 사회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기로 결심한 날에는 나 자신을 격려하고, 그렇지 못한 날에도 그 상황을 외면하지 않고 깊이 생각하는 태도를 가져보면 어떨까요?


지하철역에서 마주치는 구걸인은 단순히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존재입니다.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요?"라는 질문에 매번 같은 답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에 진지하게 답하려는 마음만은 늘 간직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삶은 우리를 바쁘게 하고 때로는 무감각하게 만들지만, 우리는 여전히 따뜻함을 나눌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따뜻함은 생각보다 작은 행동에서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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