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선배가 인사를 건넸다. 미국에서 목회를 하며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던 그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작년에 아버님 돌아가셨을 때 못 왔네, 그래도 조화는 보냈어."
그 말은 가벼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가 말한 ‘조화’라는 단어가 마치 마음의 공백을 채우는 도구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그는 나름의 방식으로 위로를 전하고자 했을 것이지만 나는 그 말에서 진정성을 느끼지 못했다.
관계란 마음이 닿는 일이다. 물리적인 거리가 멀어도 서로가 같은 온도를 나눌 수 있다면 거리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마음이 담기지 않은 말은 손을 내밀어도 잡을 수 없는 허상처럼 허전할 뿐이다.
진정성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말의 무게에서 나온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슬픔이 머물렀던 자리를 진심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굳이 길고 화려한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많이 힘들었지? 함께하지 못해 미안해"라는 한마디가 더 깊이 닿을 수 있다.
진정성은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다. 살면서 수많은 관계를 맺지만, 그 관계 속에서 진정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삶을 깊이 들여다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누군가의 상실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마음, 겉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려는 노력, 그리고 말 한마디에도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있어야 한다.
어쩌면 선배는 조화를 보내며 나름의 애도를 표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그의 말에서 마음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다. 나는 그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앞으로 나 역시 누군가의 아픔 앞에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를 다시금 되새겼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인간관계는 때때로 형식적인 틀 속에서 흘러가지만, 진정성이 있는 관계만큼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이다.
나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 말과 행동은 진정성을 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질문이 내 삶을 더 깊이 있게 만들어가는 것 같아 다행이라 여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