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말에는 사용하게 된 시작의 동기와 역사가 스며있다. 일상에서 무심코 내뱉는 말이 자신도 모르게 인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에 길들여져 성향과 성품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자신이 사용하는 말의 어원과 동기를 살펴보아야 한다.
얼추 이십 년 전쯤이다. 정확한 년도를 떠올려 보려고 해도 시간이 지나다 보니 수많은 기억과 엉겨있어 알 수가 없다. 하지만 그 과정만큼은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이 글이 지금의 시대와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유튜브를 보면 지금도 소위 지도층이라 하는 분이 일제 잔재어를 자랑스럽게 사용하고 있어 흉한 사체를 보는 느낌이다. 모두가 각성을 하고 자신의 말을 살펴야 한다.
그날은 거래처를 방문하기로 한 예정 시간보다 일찍 출발한 탓에 시간적 여유가 있어 전통 찻집을 운영하는 지인의 가게에 오랜만에 들렀다.
사업을 하느라 늘 정신없이 바쁘지만 주어진 시간만큼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시간에 맞춰 출발을 하였다. 입안의 감미로운 차향을 한껏 느끼며 느긋한 마음으로 창문을 여니 여느 때보다 바깥바람이 상쾌하였다. 언양 상북면을 지나며 도로 위에 걸린 현수막을 보는 순간 급제동을 하였다. 뒤에 따라 오던 차가 영문도 모른 체 놀라서 같이 급정거를 하였다. 미안하다고 손을 흔들어 주고 주행에 방해가 되지 않게 도로 옆으로 주차를 했다. 혹시 잘못 보았나하고 차에 내려 다시 현수막을 올려보니 마을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인데 커다란 글씨로 '상북면 부락 축제'라고 쓰여 있다. 볼수록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조선 말기에는 세계정세가 혼탁하게 소용돌이치는 때이다. 집권층은 급변하는 정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였고 권력자는 자신의 아집을 믿고 나라의 문을 걸어 잠그고 척화비로 백성의 눈을 가렸다. 권력은 파벌 다툼에 혈안이 되어 변화와 개방이라는 시대 흐름에 등을 돌렸다. 기득권은 권력에 아부하며 백성의 고혈을 짜내어 화려한 술잔치를 벌였다.
그들은 백성들의 안위에는 관심도 없었다. 돌아보면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쇄국은 국가적 실책이자 크나큰 자충수였다. 결국 나라를 뒤흔드는 개방의 바람 앞에 스스로를 지킬 수 없었던 조정은 주변국의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이 시기에도 권력층은 여전히 자만으로 가득 차 지각 있는 백성을 억압하였다. 그 결과 조선은 일어설 기회를 놓쳐버리고 무능의 나락에 떨어져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고 주권을 강탈당해야만 했다. 계속된 침탈과 강압에 의해 강제 합병으로 온갖 치욕적 수모를 겪어야 했고 민중은 일제의 잔학한 총칼에 목숨을 잃었고 땅을 수탈 당하고 저항의 의지는 결박당했다. 자식을 빼앗기고 말을 빼앗겨 가슴에서 피눈물이 나도 하소연조차 할 수 없었다. 반세기 동안이나,
역사는 가정이 없다고 하지만 반성과 교훈을 얻고자 한다면 역사를 돌아보며 가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가 없다. 당시에 지도층이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알아차리고 개방을 하여 기술과 문화를 받아 드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국가와 백성의 안위를 생각하는 지혜로운 왕조였다면 일제가 저들 마음대로 이 땅을 침탈 할 수 있었을까. 사대사상으로 기술을 홀대해 왔던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개방 정책을 편다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지만 이미 그전부터 외국의 문물과 많은 접촉을 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군이 타국의 기술을 배워서 조총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이때부터 새로운 기술과 문물을 받아드리고 나라의 힘을 키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중국과 국경이 설정되기 전이라 조선인들이 많이 살았던 만주는 당시에 무주공산이라 만주를 넘어서 국경이 설정 되었을 것이라 짐작 할 수 있다. 대마도와 오키나와 군주가 조선에 찾아와 섬을 봉헌하겠다고 했을 때 이를 수용했다면 이 섬은 지금 우리의 영토가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가정에 충분히 실효성이 있다고 한다면 시대의 지도층은 깊이 각성해야 한다. 문을 닫아걸고 기회를 차버린 오판과 교만함으로 인한 대가로 이 땅의 백성이 피를 토하는 울분을 반세기 동안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지도층의 무능한 지도력에 백성은 나라의 안팎에서 수많은 피를 흘려야만 했다.
일제는 사무라이의 잔인성에 뿌리를 두고 있어 학살과 만행을 가문의 자랑으로 여기기에 지나간 역사에 아무리 사과를 요구해도 입만 아플 뿐이고 소귀에 경 읽기이다. 사무라이에게는 힘의 논리만 있을 뿐이라 처단과 할복은 있어도 사과라는 말은 치욕적인 굴복이라 여기기에 그들의 머릿속에 사과라는 말은 태생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러함에도 권력층의 일부는 각성과 통탄보다 제 몸을 사리기 위해 움츠렸고 일제에 굽실거리며 잇속을 채웠다. 지금 지나간 역사를 아무리 반성한다 해도 당시 백성의 피 맺히는 아픔을 어찌 속속들이 알 수가 있겠는가. 다만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한 치욕의 역사를 알수록 다시는 이러한 수모를 겪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저리고 아픈 가슴의 상흔을 받아 드리되 잊지는 않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가 정신을 차려야 한다. 생각해보라. 스스로의 힘이 없어 국제사회에서 냉대와 멸시를 당했고 남의 도움으로 어부지리 해방이 되었지만 혼란기를 겪으며 근근이 연명을 하며 주린 배를 감싸 안고도 악착같이 자식을 교육시킨 결과 지금은 국가 경쟁력을 키웠다고 하지만 칠십 년이 넘는 세월에도 아직 일제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비천한 신분을 가진 최하층민이 모여 사는 집단촌을 가리켜 부락이라고 하며, 일반인과 섞일 수 없도록 구분을 해놓고 천대를 하였다.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일제가 우리 민족을 멸시하기 위해 사용을 강요 하였던 부락이란 말을 아직도 버젓이 쓰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일본의 최하층민인가. 도대체 국가와 국민의 자존심이 어디에 있는건가.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면서 가장 먼저 한 일은 민족의 정기를 끊기 위하여 명산의 혈자리를 찾아다며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러한 일제가 자신을 우월한 족속으로 세뇌시켜 받들게 하였고 우리를 미개한 조센징이라 부르며 멸시하며 짓밟고 다녔음에도 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역사에 대해 각성도 하지 못한 체 아직도 최하층 민을 자처하는 말을 쓰고 있다면 역사에 분개할 줄도 모른단 말인가.
2016년 1월 28일 부산일보 신문 지면을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내용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자각하지 못하는 언론의 부끄러운 현실을 바라보는 마음이 씁쓸해서이다. 기사를 가장한 광고로 맛집을 소개하는 컬러 지면이다. 복집의 주인 사진까지 실려 있는데 맑은 탕이란 듣기 좋은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버젓이 복지리라고 표현을 하면서 특별히 맛있다며 장황하게 지면을 채우고 있었다.
더 기가 찬 것은 그 앞면 하단에 바른말 고운 말 고정 기고란에 부장의 직함으로 바른 말을 사용해야 한다는 기사를 싣고 있었다. 제 눈앞도 못 살피는 신문을 발행하는 신문이 대체 양식이 있는 신문사인가 싶어 담당 기자에게 몇 번을 전화를 했지만 계속 자리에 없다고 하여 동료기자에게 이러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동료기자 또한 별일 아니라는 듯이 시큰둥하였다. 신문사를 찾아가 따지고 싶었지만 그만 두었다.
언어를 일깨우고 말을 순화시켜야 할 언론에서 조차 이처럼 우리말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니 여기에 무슨 말을 하겠는가. 순수 우리말인 맑은 탕이라고 기사를 써놓았다면 구독자가 얼마나 뿌듯하였겠는가. 그날 당장 신문 구독을 중지하였다.
상북면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 옆에 지역 농협이 있어 들어가 창구 여직원에게 현수막의 마을청년회 회장과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하니 왜 그러느냐고 되묻는다. 부락에 대한 어원을 이야기해 주니 여직원도 공감을 하였는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회장이 지금 자리에 없고 총무가 전화를 받는데 통화를 하겠느냐고 묻는다. 총무에게 이러한 내용을 전하니 회장과 의논하겠다고 한다. 전화를 끊고 나오려고 하니 창구의 여직원이 “혹시 국어 선생님이세요.” 하고 묻는다. 씁쓸하게 웃으며 “아니요, 우리말을 제대로 쓰게 하고 싶을 뿐입니다.” 하고 나왔다. 거래처에서 일을 마치고 며칠 뒤 그곳을 지나니 현수막을 걷어 버렸는지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부끄러운 역사를 외면하고 잊어서 안 된다. 우리는 침탈당한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되돌아보고 다시는 그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철저하게 반성을 하고 각성을 해야 한다.
정치인이 방송에 나와 어두운 뒷골목에서나 쓰는 거친 일본말을 생각 없이 섞어가며 정책과 소신을 밝히기도 한다. 이는 평소에 얼마나 천박한 언어를 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사회적 지도층이라고 내세우면서도 정신적 독자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음을 사실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다.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건달처럼 어깨에 힘을 주고 거칠게 내뱉는 상소리를 구사하는 사람이 어떻게 국민을 대표하겠는가. 지금은 많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주변에는 자각 없이 일제가 뿌려놓은 말의 찌꺼기를 사용하고 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정신적으로 성숙하다면 자신이 쓰는 언어를 살피며 각성을 해야 한다. 언어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신이고 인격이다. 진정한 소통은 카멜레온 같이 변색하는 언어가 아니라 마음이 담긴 진솔한 언어를 사용함으로서 진정한 소통할 수 있다. 또한 개개인이 나라의 언어를 바르게 사용할 때 정신 도한 올곧아 외세에도 휘둘리지 않는 당찬 국가를 만들 수 있다.
이것은 국어 선생님이 아닌 평범한 소시민 모두의 지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