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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03. 2021

바람이 틔운 시간

집콕이 이리 좋을 수 없는 요즘, 겨울이 깊어갈수록 겨울이 포근해서 만지락 거린다. 연말에 잠시 내려온 큰아이는 노란 꽃을 안고 와서 집 안은 봄 같다.

큰아이를 데리고 나왔다. 어제는 동네 공원길을 둘이 걸었는데, 시험 준비로 오늘도 이른 아침 독서실로 향한 막내 아이는 두고 셋이 나갔다. 아마 이렇게 열심히 공부한 적이 있었을까, 그저 대견하고 기특하다.

찬바람이 참 좋아서 추워도 맑아졌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달리는데 어느새 요술의 고개 출발점에 이르렀다. 그러고 보니 아이들 어릴 적 데리고 온 적이 있었구나 했다.


새해 첫날, 눈 소식만 들렸는데 본 적 없던 눈이 있었다.
흙 속의 눈이 얼어서 녹지 않아서 조금뿐인 눈이 많아 보였다. 뜻밖에 하얗게 포근했다. 눈을 밟으면 소리가 날 것만 같아 귀 기울였더니 진짜 났다. 작아도 울림은 산속의 공기를 흔들고 겨울 정서를 안겨주었으니, 요술의 고개가 맞다.

출발점에서 차를 멈추고 기다렸다. 내리막인데 도로가 올라온다는 요술 고개의 리듬을 느끼고 싶었는데, 요술을 부리지 않았다. 몇 번이고 종점까지의 짧은 구간을 왕복했는데도 도무지 느낄 수 없었던 요술 고개는 무심했다.


그래서 내려서 걸었다. 그랬더니 조금씩 요술을 부렸는지 아니면 움직이기 바라는 마음이 통했는지, 암튼 도로가 아주 조금은 올라오는 것 깉았다. 옆에서 애써 부추기는 옆지기의 목소리와 열정이 컸다.

역시 요술도 진심이다.

한적한 고개를 돌아가니 칠곡보가 있었다. 낙동강을 끼고 넓게 펼쳐진 공간은 생각보다 아름다웠다. 불어오는 강바람을 맞고 움츠려 걸어도 머릿속이 찌릿해도 따순 느낌이 있었다. 그건 아빠 등에 업힌 아이의 등이 전해 주는 허그였다.

어부바, 해줄게, 라는 아빠 말, 사랑하는 말,


나두 어부바, 정말 오랜만에 나두 업혔다.
아마 무거웠을 텐데 ㅎ
소소한 나들이, 하늘은 시렸고

맨발이 시린 줄도 몰랐다.
바람이 틔운 시간이 있어주어 고마운 요즘,
자연이 고마운 요즘, 아이가 곁에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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