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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an 07. 2021

테이크아웃,

노곤하게 눈이 녹아들기를 기다렸을까, 움직이고 싶었다. 가만히 겨울을 만지고 싶었다. 마침 오늘 쉬고 있던 옆지기에게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이 한파에 나가면 얼어 죽는다'는 말에 묘한 배신감이 느껴져 '그럼 나 혼자 다녀올게'라고 했더니 따라 나선다. 드러낸 내 의도가 들켜버렸다. 금방 또 묘한 배신감을 회복하고 돈독해졌다. 곧바로 들키길 원했고 들켜서 좋았다.

그런데 막상 나가니 정말 추웠다. 그럼에도 시린 공기가 아까워서 걸었는데 하늘은 또 얼마나 파란지, 도무지 겨울 한가운데는 맑음이었다. 눈이 내렸고 눈을 녹인 겨울이 나를 보았다. 나만 너를 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내 앞에 놓인 겨울 정서는 무엇보다 간결한 문장 같았다. 담백한 언어는 목소리 없이 싱거웠으나 속내는 편했다. 눈 맛이 이럴까, 눈을 밝으면 소리가 났다. 쌓이지 못해 덮였다. 마치도 봄을 위한 배려 같았다. 깨우지 않고 우리를 깨우는 숨결들,

걷다가 문득 커피 생각이 났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누구나 볼 수 있던 내 옷차림은 정말 나라고 말할 수 있는 단서가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폭 쌓인 나를 알아보기란 쉽지 않았을 테니까, 어느 정도의 단장은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상관없었다. 무작정 커피가 그리웠으니까 커피 마시러 가자, 그랬다. 사실 커피를 마시는 일은 단정 지을 수 없는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 무수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오늘처럼 별 일 없듯 평범한 삶의 일부가 모든 것을 포함하기도 한다. 우리가 어떻게 달리기 시작했는지 이름만 알고 있던 카페를 찾아갈 수 있었던 모든 선상의 의미기도 했다.


비록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오래 창 밖에 시선을 둘 수 없었지만 이거면 되었다. 아인슈페너와 아메리카노를 받아 들고 나왔다. 낯선 동네 어떤 길을 서성이다가 햇살 내린 정원 벤치에 앉아 찬 겨울을 만나다가 어느새 오싹한 한기에 차 안으로 뛰어 들어가 히터를 켜고 커피 마시던 기억이 꼬리 칠 테니까, 차 창밖의 햇살이 성큼 우리를 눈부시게 했으니까,  다 가질 수 있었다. 오고 싶으면 또 오면 되고


부디 그땐 푹 파묻혀 있어도 좋을 날이면 좋겠다.
별스럽지 않게 별스러운 하루의 부분을 담으니 꽉 차오른다. 눈 녹듯 고마운 옆지기의 마음도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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