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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May 29. 2020

언텍트

결국 내 것이 아니구나 했다. 연결이 끊어졌다. 어디서 흘러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오늘 오후 사전 미팅을 마치고 몇몇 샘들과 추가로 논의할 일정이 있어 근처 카페에서 티타임을 하는데 그제야 손목이 허전했다. 뒤늦게 지난 동선을 거슬러 더듬어 보아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또한 어떤 장소에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외출 준비를 하고 팔찌를 채우는데 자석이 어긋나게 붙어서 다시 채웠다는 기억이 떠올랐다. 불행히도 그다음부터 기억이 없다. 애석하게도 생각의 고리도 연결이 끊어졌다. 오 마이 갓.

데일리로 특별히 애정 하던 물건이라 편하게 자주 손이 갔던지라 무척 아깝기도 했지만 생각보다 단념도 빨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애를 써도 인연이면 찾아지겠고 아니면 흘러가겠지. 그것이 어쩌면 순리기도 하겠고, 한편으론 잘 헤어졌다 싶기도 했다. 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애지중지 하던 물건들은 쉽게 잃어버렸다. 오히려 잃어버릴까 신경을 더 많이 썼는데도 불구하고 사라진다. 레이스 꽃무늬 손수건이 그랬고 선물 받은 빛바랜 나무 샤프가 그랬다. 이외에도 찾아보면 없다가도 떠오른다. 그 물건을 고른 마음이 보일 땐 더 간절해졌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잃어버렸으나 어느 정도 연결된 마음도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자주 잊어버린다.


사람 관계도 그런 것 같다. 애지중지하던 관계가 조금만 어긋나도 소원해진다. 한 사람만의 일방적인 문제도 아닌데 아무리 전후 사정을 얘기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멀어진 사이는 모르던 사이보다 못한 관계가 돼버린다. 잃어버린 건 사람뿐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지워지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인연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 같다. 잃어버린 팔찌처럼. 억지로 하는 건 뭐든 힘드니까 그럼 안될 것 같다. 서로를 위해서라도 자연스럽게 흐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


팔찌를 잃어버리고 보니 언젠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 예감했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잠금 부분이 자석으로 서로 끌어당기면 동그란 볼이 된다. 힘이 강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떨어지면 어쩌나 늘 조심스럽기도 했는데 오늘이 그 날이었다. 비로소 팽팽했던 끌림이 헐거워진 상태는 더 이상 조심하지 않아도 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어딘가 툭 떨어져 있을 끌림을 누군가 가져가도 난 좋겠다. 끌림은 아직 새것처럼 거기서 반짝일 테니까.

모처럼 미팅을 했다. 줌 회의를 준비 중이다. Untact, 코로나 위기 후 달라진 신세계를 맛본다. 코로나로 연결된 소통방식이 불러올 엄청난 변화를 감지하고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는 또 다른 세상을 궁리한다. 이렇게 잃어버린 세계의 끌림은 수시로 온다. 팔찌를 잃어버려도 커피맛, 끌리는 좋은 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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