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쉼표 사이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May 31. 2020

여름이 오는 시간


봄이가고 여름이 오려니 뜨거워진다. 태양은 그대로 태양 가까이 우리가 다가가 여름이 되었다. 어떤 공기는 유난히 데워져서 늘어지고 어떤공기는 그 사이에서 서늘하다. 냉담마저 저절로 섞여버릴 준비중이여서 간혹 지키기 어려운 침묵 속에 아직은 미지근해도 좋을 바람이 반갑다. 유월이 오기전에 에어컨 필터를 꺼내 물로 씻었다. 선풍기도 꺼내 다시 씻었다. 선풍기 두대 중 한 대는 오래된 기계음이 돌아갈 때 마다 소리를 낸 것 같다. 아직 시동을 걸지 않아서 그런지 열 받을 일 없이 소리가 다소 안정적이다. 존재하는 그 모두는 쉼표가 필요하다. 저마다 푹 쉬면서 서로를 살피고 살린다. 그러니 다급할 필요가 없다. 이처럼 공백은 자연스럽게 쉼이 오고 가서 산다.


오늘이 지나면 달력 한장을 넘기게 된다. 그리고 목마른 유월이다. 일년의 반이 접히면 유월은 생각보다 결실같다. 또한 탐스럽지 못한 결실을 담아 다시 절반의 시간을 맞이하는 시점이기도 해서 뭔가 다시 마음을 열기도 한다. 닫혀버린 시간을 열어갈 때 시간은 사람의 몫이다. 풍요로운 건 결실보다 가꾸어 가는 삶인 것 같다. 심지어 밭을 갈고 다시 씨앗 하나 심기도 한다. 다만 일기예보 없이 오는 날씨는 가끔 미지수다. 그럼에도 날씨의 불확실성에 대한 예측 불가능마저 우호적이다. 아낌없이 하늘을 보고 바람의 온도를 만진다. 흙안에서 계절은 소리없이 소리나게 온다. 미처 잊지않도록 알려준다. 오늘처럼 달력을 한장 넘기전의 의식처럼 선풍기를 꺼내고 먼지를 씻을 수 있도록 친절하다.


물리적 절기를 그은 건 경계도 분리도 그 무엇도 아니게 다정하다. 세상의 아침이 오고 세상의 하루가 여기 와 닿아서 늘 오늘은 새 날이 되고 새날이 무르익어 싹을 틔워 연두가 되더니 그 연두가 짙어지고 초록이 오면 여름이 성큼 오는 줄 알기에 얇은 옷을 입고 선풍기를 꺼낸다. 눈치주기를 기다렸다. 먼지 하나 없이 말끔한 물체의 마음이 여름이 되면 시원하게 다가온다. 뜨거움을 삼키고 품어내는 차가움을 선사할 선풍기 차례가 왔다.


휘카스도 여린 잎을 피웠다. 오래 기다렸다. 하루하루 눈을 맞추었다. 펼쳐진 잎사이로 조그만 봉오리를 머금고 얼마나 오래 잠겼을까. 스스로 나왔다. 내 눈빛과 관심에 무심한 듯 한참을 머물러 있더니 문득 화답했다. 때가 된 것이다. 선풍기도 휘카스도 때가 되면 스스로 지어가는 삶이 내게와 나도 가벼워지는 시간으로 왔다. 먼지 하나 없이 깨끗이 씻어준 옆지기 마음도 선풍기 마음도 다 고마워서 오래된 선풍기 물기를 닦으며 올 여름도 잘 부탁해. 그랬다.

깨끗한 바람이 분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 흐르듯이 마주 앉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