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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12. 2020

반짝반짝, 이렇게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운전을 하고 공간을 이동하면 먼 세상이 품으로 안겨온다. 그때 느낌이 참 좋다. 보이는 그 모든 것이 갓 태어난 듯 내겐 삼킬 수 없어 토해내며 뛰쳐나온 아득한 첫사랑처럼 내 공간을 너머 만나러 간다. 그 어떤 두려움도 동시에 신뢰는 그 모든 용기를 내게 만든다. 닫혔던 공간을 열고 갇혔던 생각을 여니 조금씩 세상이 넓어진다. 제법이다.


이른 새벽 김포를 향해 달렸다. 그곳에서 이틀 연이은 강의가 있었다. 누군가를 만나 어떤 이야기 마당을 펼친다는 건 역사를 쓰는 일 같다.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소통은 또 얼마나 은근한 공감을 지어갈지. 생각만 해도 설렌다. 새벽 운전을 위해 전날 일찍 잠자리에 누워 눈을 감았는데 잠이 오지 않아서 눈이 아팠고 그래서 자주 뒤척였다. 마치 소풍 가기 전 날 잠들지 못하는 아이처럼. 새벽 세시에 맞춰놓은 알람이 잘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미리 챙겨둔 노트북과 강의자료들을 다시 한번 점검했다. 사실 대구에서 김포까지 제법 먼 거리를 운전하긴 첨인 것 같다. 지난번 강의 때 운전이 부담스러워 기차 타고 버스 타고 생각보다 힘든 동선으로 헤매었던 기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에 이른 새벽부터 달리기로 했다. 무척 멀었다. 다행히 한동안 밀리진 않았는데 역시나 서울의 교통사정은 미로 같았다. 7시도 안된 이른 시간부터 잔뜩 밀린 차들 뒤로 한참 멈춰있었다. 조급한 불안이 밀려와 두근거렸다. 간신히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오니 조금씩 수월했다. 반대편으로 꽉 밀려 멈춰 선 차들의 꼬리는 과히 명절 귀향길 같아서 매일 명절이면 어떡하나 그랬다. 서울에서 사는 일은 이토록 헐거울 사이가 없이 바쁘구나. 잠시 약간의 측은함마저 들었다.


이렇게 멀리 일부러 오기도 싶지 않은 곳이기도 해서 여행처럼 막내딸이랑 같이 왔다. 엄마 혼자 멀리 보내기 걱정스러워 같이 동행하겠다는 나서는 딸. 든든한 친구 같다. 그사이 서울서 큰딸이 오고 내 강의를 마칠 즘엔 여자 셋이 다 모였다. 여섯 시간 꼬박 이야기 나눔은 긴 시간 새벽 운전의 수고로움마저 풀리고 한 공간에 모인 에너지는 힘찼다. 몰랐던 이들이 모인 공간은 어떤 긴장감과 신선함이 섞인 공기로 먹먹하다. 그 순간 우연을 가장한 필연처럼 서로는 아름다웠고. 비로소 우리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되었다. 이 얼마나 숙명적인 만남인가. 아득히 같은 하늘 아래 우리가 존재하였음으로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은 그 자리에서 개별적 역사를 쓰기 충분한 역사의 증명이며 증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더불어 쓴 하루의 역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오니 반기는 내 식구들. 식지 않은 열정이 한순간에 사라져도 힘이 났다. 그날의 역사를 함께 그리는 동그라미는 사랑이다.

​바다가 보고 싶었다. 그래서 달려갔다. 강화의 바다 일몰이 무척 아름다웠다. 모래밭을 한참 거닐다 먼바다를 보았다. 서해의 바다는 동해바다 같지 않아서 흐려도 근사했다. 자그마한 해안선에 해가 내릴 즘 그 빛으로 물든 하늘과 바다는 오로지 어떤 간절함으로 붉어졌다. 간절한 욕망 대신 내려앉은 그곳의 평온과 마주한 마음도 붉어져 왠지 삶은 다 뭉클한 것이 되게 했다. 만지지 않아도 전해오는 온기는 너무 뜨겁지도 너무 미지근하지도 않은 사람의 체온 같은 36.5도로 숨 쉬었다. 어둠이 내리는 바다를 앞에 두고 조개를 구워 먹었다. 미리 아이들이 찾아놓은 맛집 덕분에 나는 따라가면 되었다. 이보다 고마울 수가. 나를 이끄는 손길들과 나를 기다려준 하루를 잘 마친 안도감으로 끌렸다. 바쁜 일상에 고요가 깃들면 주어진 일도 여행처럼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하는 순간 선물 같은 하루로 안긴다. 스쳐 지나는 모든 것들이 살가운 순간은 아쉬워도 또 올 거라는 기대를 만든다. 자기 전 내일 아침 7시 알람을 맞췄다.



그다음 날 아침 기대하지 않았던 조식이 차려졌다. 브런치 느낌의 가벼운 음식들을 먹으니 절로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나 혼자 일어나 고요히 방을 빠져나오려고 했는데 아이들이 부스스 일어났다. 괜찮다고 아까운 잠 깨울까 봐 더 자라고 했지만 같이 아침 먹자고 눈 비비고 일어나 앉는다. 아이들은 그대로 사랑이다.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듬뿍 힘을 얻고 시작한 이튿날 새로운 만남이 열렸다. 어제와 다른 이들을 만났다. 같은 아침을 열고 우리가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끼는 삶의 희열마저 같이 느끼고 싶었다. 선물처럼 새로 태어난 하루. 우리가 나눈 이야기들로 우리는 함께 자라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날마다 그들에게 배운다. 가르친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함께 걸으면서 걷는 걸 배우는 우리는 공기처럼 하루의 순간을 맞이하고 보낸다. 수많은 순간 우리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어떤 순간이 내게 오면 무의미한 하루마저 숨 쉬고 아쉬워도 내일을 꿈꿀 테니까. 끊임없이 밀려오는 어떤 불안과 의심 속에서도 지금 여기에서의 행복을 발견하고 앞으로 걸어갈 것을 믿는다. 일시적인 고통과 아름다움 사이에서 고민하고 깨달아가는 모든 순간이 주인공으로 가까워질 때 어설픈 충고 따위에 흔들리지 않음을 알아갈 테니까. 이런 생각이 오면 내 어설픈 생각을 살피는 시간이 찾아와 주고 아쉬워도 나는 자란다.



​진정성이라는 카페를 교육 중 어느 분이 추천해 주었다. 이미 딸이 검색한 그곳과 같은 곳이라는 사실이 그곳의 존재를 말해준다. 진정성, 이란 이름이 주는 가치를 부여한 그곳으로 향했다. 진정 커피가 그리웠다. 다만 그곳은 밀크티로 유명한 곳이어서 밀크티를 주문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맑고 파란 하늘이  펼쳐진 그곳의 그림처럼 커피도 그랬다. 한참을 앉아서 쉬었다. 같이 사진도 찍고 근처를 걷기도 하고. 오직 그대로 별스럽지 않게 소소한 고마움이 진하게 스며들었다. 유난히 반짝이는 아이들이 더 빛났다. 이틀 강의를 모두 마치고 기다리던 딸들과 같이 여기 올 수 있는 기쁨이 더해지고 다정한 말들은 내 피로감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이건 축복이었고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큰딸을 태워주고 돌아오는 길 왠지 모를 허전함도 잠시 우리가 함께한 시간으로 점점 마음 한편이 부풀기 시작했다. 예정된 그리움을 신뢰하듯.

헤어짐은 늘 아쉽다. 그럴수록 내 곁의 아이들은 축복이다. 이렇게 일정을 마치고 난 피곤해도 힘이 난다. 내 일정에 아이들이 같이 오긴 첨인 것 같다. 코르나로 학교에 가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게 뭐든 다 나쁜 건 아니었다. 그래도 별 탈 없이 말끔히 사라져라 그랬다.


"우리가 잠시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을까?" 나의 시간을 찾아와 눈 맞추고 내게 보내준 박수와 그 모든 배려와 말할 수 없는 감사를 기억한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삶은 희망의 증거를 남기며 시작된다. 이렇게 반짝반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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