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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12. 2020

온다는 것

이윽고 더위에 무,를 붙이면 여름이 익어 심지어 무성하게 익어간다. 우리에게 계절을 알리는 일이 흔하지 않은 소명처럼 많고 많은 점들이 선으로 연결된다. 스치듯 장마라는 말을 듣고 문득 놀랐다. 봄에서 멈춰버린 시간 사이에서 시간은 결코 쉬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불쑥 들어와 버린 여름이 이만큼 깊어져서 나도 여름이 되는 동안 눈치채지 못할 철학은 자연으로 돌아왔다.

곧 뭐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하늘이다. 지루한 정적 사이 바깥으로 아이들 소리가 허공을 맴돌다 작아지는 저녁이 와도 덥다. 잠들지 못한 열기는 이어지고 선풍기는 아직도 돌아가는 저녁이 꼭 한여름 같다. 무, 에 한, 을 더하니 무더운 한여름, 먼 얘기 같았는데 이미 여기 와 있었다. 봄이 무너져 이토록 여름이 오도록

저녁이 와도 불을 켜지 않아도 되는 지금은 여름이다. 대단히 끌리는 것도 아닌데 도무지 건너뛸 수 없는 봄 다음 오는 계절의 이름으로. 또한 노랗게 물든 여름이기도 했다. 여름 문 앞을 서성이던 꽃물결들. 무에서 낭만으로 흘렀다. 그것은 스쳐 지나갈 하루의 끝에서 심심하지 않게 온다. 누구든지 허무는 경계에 와서도 물러남이 없이


그 사이 마음도 온다. 한 계절을 돌아 낭만을 알아버린 당신은 새로운 자신을 껴안고 온다. 더워도 뿌리칠 수 없는 세계는 마치 일상의 존재와 이치를 알아버린 누군가의 어떤 꿈이 그립도록 열린다. 지난날의 흔들리던 기억 그 어디에도 없던 열매. 씨앗이 날마다 자라다 만난 여름. 땀 흘리도록 잎을 피우는 여름. 내가 보고 느낀 순간이 점점 싱그럽게 온다. 때때로 기대없이 그리는 여름이 저절로 자라듯 사소하지만 특별하게 온다. 보통은 더워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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