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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n 24. 2020

여름은 좋겠다.

뜨거웠다. 하늘은 맑았고 바람은 오래 데워졌다. 책을 반납하고 책을 빌려 온다고 잠시 걸었다. 빛나는 바깥은 여름이었다. 에코백에 가득 책을 담아 걷다 보면 참 좋다. 나만의 책이 된 것 같아서 왠지 내 곁의 삶이 존중받는 느낌이 든다. 책 속의 글들이 통째로 내게 오지 않아도 책 속의 여백은 늘 비어서 차 있다. 그리고 어떤 것은 사라지고 어떤 것은 새로워서 거기 있다. 책을 꺼내고 책갈피를 꽂으면 어떤 문장이 오래 내게 와 쉰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빈 줄에서 서성이다 보면 별다른 생각 없이 구속되고 싶어 진다. 특이하게도 책 속을 거닐며 한 줄의 텍스트에 마음이 설렐 수 있다면 나는 그 어떤 사랑도 거부하지 않을 자신이 생기기도 했다. 숱한 밀어처럼 속삭이는 말들이 살살 간진다. 다 가지지 못해 헐거운 행간에서 오래 멈춰도 그 행간에 있는 나를 발견하는 일은 가끔 혼란스러워도 그대로의 나를 드러내고 풀어낸다. 그러면 그 순간만은 어쩔 수 없이 아름다운 사람이 된다.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아름다움은 서서히 소멸하지만 온전히 스스로 아름다운 것은 오래 아름다울 수 있으니까. 내 사랑이 끝나도 끝나지 않은 상태는 내가 쓰는 해피앤딩이다.


태양이 높이 떠서 하늘은 푸르다. 참 좋은 여름날. 여름은 좋겠다. 뜨거움 가운데가 바삭하게 구워져도 연기 없이 맑은 하늘로 눈부시니까. 한아름  담아왔다. 그 모든 것들의 다정함과 내 모든 것들의 평범함에 곁들여 걸었다. 이렇게 특별해지는 순간은 자주 나와 함께 있음을 잊지 않게 해 준다. 또한 나와 나의 관계를 오래 이어준다. 단절하고 싶은 것으로부터 이어가야 할 것 사이에 잠시 머뭇거리다가도 어느새 걸어가는 그 모든 것들을 알면서도 모르는 지점을 이어주면 든든하다. 아주 조금씩 나를 알아가는 시간이 와도 피하지 않을 만큼만 알아간다. 그만큼 산다는 건 쉽지 않다. 반복되는 자기 검열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순간을 대면한다. 불행히도 의무를 강제한 구조적 결함의 일부는 스스로의 끊임없는 진단과 평가로 계발되고 개별적 짐을 지운다. 다만 나는 이 모든 것의 범주에서 취하고 싶은 것만 취하고 싶다. 물론 세상은 그들이 원하는 형태를 제시하며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을 알지만. 알기 위해 움직인다.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아는 일과 모르는 것을 모른다는 것을 아는 일의 중요함에 무게를 두고 싶다. 땀 흘리는 여름이 와도 그 무게는 기꺼이 짊어지며. 이번 주는 푹 책만 보고 싶다. 지난주 일정에 비해 한결 여유로 울 예정임으로 대체로 시간을 비어 두려고 한다. 드물게 빠져든 감정선을 돌보기 위해 자청한 외로움도 데리고 오면 한다. 누구나 외로움을 원하면 최소한 어떤 개별적 외로움을 당하진 않을 것만 같다. 그러면 어떤 의도와 달리 나의 의도대로 삶을 지어갈 순 있지 않을까.


가끔 이런 자유는 좋다. 구속되어도 바람처럼 헐거워 드나듦이 유효하니까 혼자일 수 없다.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호명하는 여름이다. 테이크아웃 두 잔 가져와 한잔은 기말 셤 공부 중인 막내딸에게. 한잔은 내 거 하며 책 읽는 하루를 지난 이 밤도 피서 같다. 어쩐지 책 읽기 좋은 여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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