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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01. 2020

과거를 움직이는 순간

게을러지기 전에 책 몇 권 들고 나왔다. 마침 막내딸 셤 기간이라 태워준다고 같이 나오니 움직이기 한결 쉬웠다. 아침이 움직여서 이미 과거에 움직였다. 움직이는 것으로 과거로 변하는 시점에도 어쩌면 순간을 살고 있는 시점으로 이동한다. 현재를 거처 현재가 침몰하지 않게 탈과거형이다. 삶이 그렇듯 영원한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말들이 흘러간다. 움직인다는 것은 사랑이 살아 있다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는 세상 안에서 내가 움직이는 만큼 세상도 움직인다는 생각. 어차피 나의 일부분이 부분으로 점철되는 순간도 이미 과거다. 지나간 이야기도 현재의 이야기를 해도 금방 과거다. 그 후의 삶을 살아간다는 건 어쩌면 순간을 살아도 그 자리에 맴돌거나 순간을 살면서 스스로 시점을 이동하는 부분들의 집합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이 움직여서 세상에 영원한 건 아무것도 없다는 대단한 말을 믿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는 시간들이 오고 가는 것이 마치 세월의 순리처럼 무심했던 지난 시간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 사랑이 어떤지 몰랐다. 너무 순진했다. 몰랐던 세상을 만나는 일은 훨씬 더 드라마틱했지만 한층 더 빛나는 삶을 보게 해 주었다. 꼼짝없이 영원에 갇힌 마음을 열고 만난 세상은 그대로였지만 내가 만난 시점의 세상은 나로 인해 전혀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주어진 삶을 의지했고 무턱대고 신뢰한 삶에 대한 존중이 나에 대한 존중인 줄 알았다. 다만 의심하지 않았고 다만 신뢰했다. 또 다른 세상의 엄청난 비밀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내 삶의 비밀을 따르고 성을 쌓았다. 시대가 규정한 삶에 관한 완벽한 재현처럼 거부할 수 없는 공식이었다. 어떤 수식을 적용해도 정답은 정해졌고 그 외의 해답은 요구되는 사정에 의해 재단되거나 거부되었다. 공식적인 문제제기는 위험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몰랐는데 보편적인 범주는 개별적인 것들로 치장한 사적 영역에서의 최선을 만들어 갔다. 요구되는 것들을 외면한 시선은 시간 속에 갇힌지도 모른 체 정박하게 만들었고 세상이 그리는 무늬는 보통의 인간이라면 그려야 하는 무늬라고 믿었다. 그래서 한치의 의심 없이 개별적 경험에 의한 경험이 쌓이는 것을 끌어안고 무너지지 않는 성 안에서 치적처럼 공들여 모시고 살아왔다. 병아리가 스스로 알을 깨고 나오듯 어떤 우연을 가장한 필연을 만나야만 비로소 가능했다. 이미 예견된 필연은 저마다 다르게 온다. 옷깃을 스치는 우연처럼.


수많은 시간의 굴레에서 이탈하는 법이 없고 그렇기라도 한다면 그건 이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저버린 행위라는 것을 오랫동안 인지하고 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오래 내가 낀 렌즈는 누가 가져다주었을까. 그 많던 렌즈를 누가 똑같이 옮겨놓았을까. 아무도 모르게 저절로 끼워준 틀이 워낙 견고해서 한사코 거부할 엄두고 내지 못한 체 렌즈의 강도와 도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렌즈를 바꾸거나 깨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심지어 깨지면 또 같은 렌즈를 찾고 신뢰한다. 신뢰는 적절한 도수의 유지로 회복 불가능한 상태가 되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을 깨는데 이렇게 많은 시간이 걸렸다. 살아가면서 살아가는 걸 배우는 시간들이 쌓여 나를 이루는 그 모든 순간들의 정직함에 위배되는 그 순간까지도 지금은 의심하지 않아도 돼서 좋다. 내가 움직이면서 알게 되는 사실로부터 조금씩 나아가는 지금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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