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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07. 2020

여름 저녁에

등 뒤로 끈적한 땀이 순식간에 달아올랐다가 지리 해지는 걸 느끼면 그때부터 살짝 숨이 가쁘다. 지긋한 장마의 계절이 있기는 있었는지 도무지 장마의 변천은 비 없이 잔뜩 폼만 잡은 하늘로 잔뜩 흐려졌다 밝아졌다를 반복한다. 오래 어두워질 때는 조금 더 습도가 달라붙어서 오늘 저녁처럼 집으로 돌아와 조금만 움직여도 미끄러지는 촉감이 달라붙는다. 그래도 한동안 붙어있고 싶어 에어컨을 켜지는 않는다. 오래 껴안고 시원해질 때까지 그냥 둔다.



대단한 일을 짓는 일도 아닌데, 왜 난 한 가지를 정리하기 시작하면 다 끄집어내는 걸까. 옆지기는 이제 놀라지도 않는다. 문득 밤에 자다 일어나 앉으면 내 시선이 어떤 사물, 가령 서랍장에 머무는 순간이 온다. 4층 서랍을 열고 모조리 다 쏟아낸 옷을 새로 각을 새워 개어넣는다. 첨엔 조금 귀찮기도 하다가 어느새 빠져든다. 손을 댄 자리가 표가 나고 자리를 잡아주면 왠지 뭔가를 시작하기 좋은 마음이 된다. 그것이 무엇이던 시작하는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착한 용기 같은 것 말이다. 그러고 나면 또 뭘 할까를 궁리 중인 사람처럼 주위를 살핀다. 고요히 가라앉은 밤의 정적도 절대 소음을 죽일 수 있는 장치처럼 숨죽인다. 오히려 내 밤의 작업들이 아주 중요한 일이라도 되는 것처럼 더 낮고 고요한 숨결로 신중하다. 소리가 소음이 될 수 없는 손놀림과 사물들의 덜컹거림마저 조용히 소리를 잠가주면 신기하게도 자는 사람이 깨는 일은 없다. 그러니 놀랄 수도 없다. 물론 가끔 뜻하지 않게 서랍장 문을 닫을 때 조심성이 지나치면 오히려 뒤늦게 쿵, 소리를 내는 일 외엔 다 괜찮다. 그렇게 밤의 시간이 흘러도 내 시간은 속절없는 순간에 머물러 눈이 가는 대로 손이 갔다. 그러면 그 자리와 그 주변은 개운해진다. 쓸데없이 긁어 부스럼 낸  내 생각의 아우성도 잠들고 그 순간만은 오로지 단순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고요해진다. 모든 사물들이 제 자리로 돌아가면 나도 어느새 제 자리로 돌아간 사람처럼 평온해진다. 가벼운 건 마음이어서 마음을 비우게 만든 밤의 산물들이 말끔히. 정리되면 덩달아 깨끗해진 나는 마지막으로 화분을 옮겨 그 곁에 둔다. 마치 초록물 흐르는 숲 속의 아침을 맞이하는 의식처럼, 그렇게 밤새도록 밝혀진 밤을 아침과 동시에 환원하는 순간의 동력으로 하루를 살면 참 좋다.



오늘은 밤의 정적 대신 저녁의 후끈함이 찾아왔다. 한바탕 청소를 하고 나니 땀이 흐른다. 나만 덥고 나 빼고 모든 공간은 맑고 개운하다. 심지어 시원한 여름 저녁이 되었다. 그러면 된다. 나의 수고로움이 살린 오늘 저녁엔 아무도 없다. 긴 시험을 마치고 종강한 막내는 오늘 홀가분하게 여행을 떠났다. 상황이 그래서 하룻밤만 쉬었다 온단다. 부산 해운대 바다가 펼쳐진 뷰가 예쁜 숙소 사진을 보내왔다. 부럽다. 그들의 꾸밈없는 청춘, 빛나는 시절이. 열심히 공부 한 그녀들의 떠날 수 있는 하얀 마음이 퍽 살갑게 다가온다. 소소한 것을 누리고 사는 그녀들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참 예쁘다. 그러며. 빛나는 주스 한잔 마시며. 큰딸 그리워 생각하는 저녁이다. 이렇게 하루가 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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