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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19. 2020

문이 닫히면 고요하다.



버스를 타고 갔다. 오늘 일정이 있었는데 그곳의 주차가 어려운 사정은 아무리 살펴도 운전할 엄두를 내지 않는다. 내겐 어느 순간 내 차가 짐처럼 될까 봐. 차를 배려하고 나를 배려하는 순간이지만 사실 익숙한 동선이다. 벌써 어제 일인데 하룻밤이 지나고 오전이 되었다. 잠은 쉬이 오지 않아서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하면 할수록 피로감은 눈만 아파오고 뒤척이면 잠은 더 달아나서 기어이 일어나 앉아 차가운 자몽주스를 생각한다.

어느 골목 옆으로 이름 모를 카페는 그 골목 대부분의 한옥집을 고쳐서 만들었는데, 지붕과 골조. 그리고 면과 모서리를 그대로 두고도 아주 조금 손만 본 느낌이 형태를 유지하고 시간을 가뒀다. 옛날로 돌아간 타임머신처럼 이곳만 멈춰놓고 즐겁다. 어쩐지 하루 종일 켜진 불빛은 저녁이 오면서 골목 바깥은 꺼지고 골목 안은 골목마다 켜졌다. 마치 꺼지지 않은  시간을 소환한 거리처럼 사무치게 노란빛에 잠긴 거리를 걸었다. 문득 어두워지면서 다시 태어나는 마을처럼 차츰 불빛을 줄인 조명 아래 빛이 번졌다.

오늘 일정을 잘 마치고 다시 집으로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친한 언니가 태우러 온다고 했다. 사소한 감동은 모든 피로를 녹였다. 미소를 지으며 정류장 근처 나무 아래 벤치에서 기다렸다. 나뭇가지가 자주 헝컬어지게 흔들렸는데 그럴 때마다 뭔가가 떨어졌다. 잎과 같은 잎색이었는데 동그랗게 내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떨어질 때마다 움츠렸다. 예기치 않게 떨어진 것들은 떨어져야만 했을 것이다. 그 차례는 그 입장에서 정확했다. 바람이 불 때마다 슬쩍 떨어질걸 대비해 가벼워졌을 것이다.

그리고 언니가 왔다. 그리고 허기진 내게 밥을 사주고 자몽주스를 사 주었다. 그곳에 갈 생각이 아니었는데 우연처럼 잘못 차를 몰고 들어간 세계는 골목길마다 희미했다. 유난히 반짝이는 빛 따라 들어갈수록 점점 주위는 희미해졌다. 오직 그 공간만 축복처럼 사람들이 오고 고요히 소리 없이 웃는 축제처럼 모였다. 어느 곳이나 카페 문을 열면 갑자기 소리가 커질 것처럼 축제는 안에서 열리는 것 같았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며 밖에서 안의 축제를 보았다. 하염없이 음소거 중인 창 안의 사람들에게 음소거 해제를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 가만히 보고 듣고 걷다가 끌리듯 우리도 그 안에 들어갔다. 카페 이름도 모르고 갇힌 것 같았지만 들어와 앉으니 그곳은 그곳처럼  빛났다. 무채색의 향연처럼 색이 색을 먹어버려서 잃어버린 색이었다. 창밖에서 보는 풍경 안에 우리도 있었다.

그리고 다시 걸어서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무슨 말도 안 되는 비밀처럼 비밀이 되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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