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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Oct 11. 2020

보리국수.

둘이서 소파를 창가로 옮겼다. 찬바람이 불어올 때 즈음이었다. 계절 따라 기분 따라 분위기를 바꾸면 뭐든 좋아진다. 별 차이 없어 보이던 움직임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지 아마 그건 마법 같아서 너무 자주 하면 신비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공간이 표정을 바꾸면 훨씬 많은 이야기를 담는다. 그래서인지 오늘은 유난히 공간에 든 햇살이 청보리밭을 비출 때 파릇파릇 빛이 피어나는 것처럼 빛났다. 도무지 지나칠 수 없는 가을이 성큼 파고들던 날, 문득 시작된 여행처럼 시적인 순간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어떤 표현들이 오고 닿으면 그대로 소리 없이 사라질 뿐이었다. 어딘가 귀를 기울이면 어떤 존재들이 살아서 숨 쉬는 흔적처럼 왔다가 가버려도 그 자리에 맴도는 빛은 내려앉았고, 무심한 듯 자연은 심오하게도 매력적인 대화를 이어갔다.


아지랑이 같은 가을이다. 투명한 가을느낌이 좋아서 자꾸만 가을을 만지면 안긴다. 빛은 아낌없이 비어서 차오른다. 만지면 부서져도 하얗게 따뜻한다. 한 움큼 온기를 잡으면 온 몸이 데워지며 나부낀다. 드물게 이어지는 존재의 기쁨 같기도 해서 그땐 표현할 길 없는 뭔가가 서걱거린다. 어떤 시선이 한없이 흔들려도 다시 돌아올 풍경 안에 머물면 가벼워졌다. 이 가을의 증인들이 불려 나오는 길 위에 먼저 나타난 가을 품에서 아득한 존재들이 살아나고 있었다. 물들고 빛바래면서 살아지는 그 모든 순간의 빛이 결국 남긴 것들을 지워버리고 비워내면 사라지던 풍경들이 나를 스쳐 기막히게도 아름다운 숨결로 채워준다. 다가오는 깊숙한 가을이 기억하는 어떤 것도 사랑하듯 시를 쓴다. 애틋하기도 하여 눈길이 머물러 황홀해지면 어찌나 환했는지,


햇살 먹은 소파에 푹 잠긴 날

햇살이 키운 보리국수를 먹으며 나도 햇살이고 보리였다. 는 보이지 않는 생각에 동의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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