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면
21세기를 대표하는 SF 작가 테드 창의 단편 소설집《당신 인생의 이야기》에는, 외모 지상주의가 만연한 세계관을 반영한 <외모 지상주의에 대한 소고>라는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 속 세계에서는 사람들이 상대의 외모를 보면서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도록 하는 ‘칼리아그노시아(이하 칼리)’ 라는 기술을 의무화하려고 한다.
칼리아그노시아(Calliagnosia)는 아름다움을 뜻하는 접두사 칼리(Calli)와 시각이나 청각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실인증)를 뜻하는 아그노시아(Agnosia)의 합성어로, '아름다움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실미증)'을 뜻한다.
"(칼리는) 표면을 무시하고 더 깊은 내면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입니다. (p.369)"
칼리 의무화를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데, 찬성 측에서는 칼리를 통해 겉모습에 드러나지 않은 더 깊은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칼리 의무화에 반대하는 입장으로는 외모가 자신의 무기인 사람들에게는 불공평할 수 있으며, 아름다움을 보는 눈이 사라질 수 있다는 등의 의견이 제시되었다. 두 입장 모두 일리가 있지만, 핵심은 그 어느 쪽도 상대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외모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부정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테드 창은 우리 인간이 겉모습에 많은 영향을 받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실험을 하나 언급한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 입학 원서 증명사진에 나온 지원자의 외모가 매력적일수록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가졌다.”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 라는 격언은 결국 우리 인간은 ‘겉모습의 영향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알려주려던 것이 아니었을까?
(추가 의견) 나는 외모를 무기로 가지고 있진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칼리 의무화에 반대한다. '예쁜 것'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외모가 뛰어난 연예인을 보고 '예쁘다'고 말할 순 있지만, 그것이 꼭 그 사람과 사귀고 싶다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 반면 남들이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연애 감정을 느낄 만큼 '나에게는' 아름다운 이성이 있을 수 있다.
만약 칼리를 쓰게 된다면 후자의 감정을 느끼지 못해 오히려 불행해질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비록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는 데에선 자유롭지 못하더라도, 역설적으로는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게 아닐까?
※ 참고 도서 링크 - <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 커버 사진: Unsplash의 kevin lamin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