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고통
책을 통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마냥 즐겁지는 않다. 오히려 고통에 가깝다. 책 읽기는 고도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책 읽기'란 1) 문학 작품을 통해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2) 잡지나 신문을 통한 단편적인 지식을 얻는 것과 달리, 이해를 깊이 하기 위한 독서를 말한다.
적어도 내게 있어선, 통찰력을 높이기 위한 독서 행위를 취미로 삼기가 어렵다. 책 읽기는 고도의 인지 능력을 요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는 데에는 두뇌를 '풀가동'해야 한다. 그만큼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데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성격 급한 한국인들에게 독서는 매우 힘든 일이다.)
이와 반대로 술술 읽히는 책이 있다. 스토리가 흥미진진한 소설이나, 이미 알고 있는 내용으로 대부분 이루어져 단숨에 이해가 되는 교양서가 대표적이다. 전자의 경우에는 읽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재미와 감동이 있으면 빨리 읽어도 괜찮다고 본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패스트푸드에 가깝다. 저명한 학자의 연구 내용을 깊이 이해하기보단, 누군가 짜깁기한 얕은 지식을 쉽게 얻으려는 경우이다. 자신의 연구 분야에 인생을 갈아 넣은 천재들의 생각을 단시간에 이해하겠다는 건 한낱 촌극이자 도둑놈 심보라 할 수 있다.
읽는 이가 적극적으로 책에 작용하여 ‘얕은 이해에서 보다 깊은 이해로’ 읽는 이 자신을 끌어올려가는 것이다. 이것은 아주 고도로 숙련된 독서법이다. - <독서의 기술> (모티머 J 아들러) 1장 중
내 경우는, 비록 오래 걸리지만, 책 한 권을 (어렵지만)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정독을 한다. 중요한 부분에 밑줄을 긋고, 밑줄 그은 부분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최대한 이해하려고 애쓴다. 그 다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메모 앱에 옮겨서 요약을 하거나 500~1,000자짜리 칼럼으로 재구성해본다. 지금 이 글을 쓰는 것처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는 일이긴 하지만.
좋은 책 한 권을 정독하고 한 편의 글로 재구성하는 것은, 단순히 책을 읽고 끝내거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말로만 내뱉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책이 담고 있는 것은 저자의 논지 전개 과정이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한 번이라도 더 읽고 글로 재구성해봐야 진정으로 책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회사 일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어 보이고 당장 돈벌이가 되진 않지만, 일주일에 5일 정도는 지식수준을 'n단계' 업그레이드해 주는 양서(과학, 경제학, 철학 등)를 읽는다. 대개 오프라인 독서모임이나, 책 깨나 읽어 봤다는 분들로부터 소개 받은 책이다. 이와 반대로 베스트셀러나 SNS에서 광고하는 책들은 웬만해선 보지 않는다.
책을 얼마나 좋아하고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책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얼마나 에너지를 쏟았으며, 이러한 노력을 통해 어떤 통찰을 얻었는지 글로 정리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독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책을 제대로 읽는 건 대체로 힘들다. 그러나 세상에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날것의'의 지식이 많다. 체력과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 인고의 시간을 버티며 꾸준히 좋은 책을 읽으며 두뇌를 업그레이드하고 싶다.
※ 참고 도서: <독서의 기술> (모티머 J 아들러)
※커버 사진: Unsplash의 Siora Photography